미식의 나라 프랑스!
....라고 하지만 사실 나는 프랑스 음식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디저트류나 빵을 특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프랑스 음식이 내게 큰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인식을 깨 버린 것 역시 프랑스에서 먹은 음식들이었다.
생각을 조금만 전환해 보면 프랑스가 왜 미식의 나라인지 알게 된다.
프랑스 음식뿐 아니라 전 세계 이민자들이 만들어 낸 그들의 식문화가 눈과 입을 즐겁게 하기 때문!
달팽이 요리나 거위 간이 아니더라도 프랑스는 맛있는 음식들이 넘쳐나는 곳이다.
그중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파리의 아시아 음식들인데
많은 사람들이 '왜 거기까지 가서 아시아 음식을 먹어?'라고 하지만
한국의 이국 음식점들이 한국식으로 현지화했다면 이곳은 이민자들에 의해 본고장에 더 가까운 맛을 낸다.
물론 프랑스 코스 요리나 미슐랭에 빛나는 프랑스 레스토랑을 안 가 본 것은 아니다.
파리의 젊은이들이 많이 가는 캐주얼한 레스토랑도 가보고
지인 찬스로 나의 파리 왕복 비행기 값보다 비쌌던 한 끼에 90만 원의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도 가봤었다.
나의 생에 다시는 없을지도 모르는 미슐랭 3 스타의 품격 있는 맛을 느껴보기도 했지만
성격 급한 나에게 2~3시간의 코스 요리는 여러모로 힘들었다.
딱히 '이 나라에서 이걸 먹어야 해!'에 크게 반응하는 여행자는 아니라서
어차피 같은 가격을 지불할 거라면 조금 더 내가 좋아하고 먹고 싶은 음식들을 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미식의 나라 파리에서 이민자들이 만들어 낸 그들만의 독특한 식문화를 체험하는 것도
꽤 괜찮은 여행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민자들의 레스토랑은 현지들도 사랑하는 현지인 맛집이니까!
그리하여 나의 파리 소울푸드를 소개하자면,
1. 나의 소울푸드 사누키야 우동
GD맛집으로 더 유명한 사누키야 우동.
갈 때마다 줄을 서서 먹어야 할 만큼 관광객들과 현지인에게 이미 너무 유명한 곳!
나는 이 우동을 감히 나의 소울푸드라고 말할 수 있다.
일본 여행을 세 번 가봤었는데 일본에서 먹었던 우동보다 파리 사누키야에서 먹은 우동이 훨씬 더 맛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의 일본인 셰프는 무려 경쟁 가게에서 스카우트를 해오신 분이라고 한다.
이분이 만든 우동의 국물 맛이 정말 깊고 진해서 이곳에서 우동을 먹으면
국물 한 방울 남기는 것도 아까울 정도다.
예전에 이곳이 휴가 중이라 경쟁 가게에 가서 먹어봤는데 (그곳도 줄을 서서 먹긴 한다)
국물 맛의 깊이가 달랐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셰프님 스카우트되실만했구나!'
나는 주로 유부 우동이나 우엉밥이 나오는 런치세트를 시키는데 런치세트의 우엉밥의 맛이 또 기가 막힌다!
평소에 우엉을 먹지 않는 나도 이곳의 우엉밥은 싹싹 긁어먹는다.
우엉의 아삭함과 폭신한 쌀밥, 달콤 짭짤한 맛이 입 착착 감기는 게 정말 일품이다.
파리에 한 달을 머물면서 일주일에 서너 번은 이곳에 갔다.
날이 좋아서 날이 흐려서 비가 와서, 파리에 왔으니까 파리를 떠나니까 이곳에 와야 할 핑계도 다양했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달려가서 모닝 우동과 모닝 맥주를 마시기도 했고
자주 가서 그런지 말하지 않아도 나에게 한국어 메뉴판을 건넨 적도 있을 정도다.
너무너무 우동이 먹고 싶은 마음이 앞서 오픈 시간 전에 가서 줄을 서 있던 적도 있다.
개인적으로 이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자리는 키친이 보이는 bar자리 맨 구석인데
그곳에 앉으면 셰프님과 마주 볼 수 있다. 리드미컬하게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지만
음식을 만들고 지휘하는 셰프님의 모습이 정말 멋있다.
이곳이 좋은 또 다른 이유는 멋있는
셰프님과 메인 서버분이 내가 파리에 처음 갔을때 부터 지금까지 그자리에 그대로 계시다는 것.
나는 그게 참 좋다.
2. 파리의 인생 라멘집
피라미드 역 주변은 한식과 일식집이 즐비한 아시안 지역이다.
사누키야 우동 집에서 큰길을 건너 메인 아시안 지역으로 들어오면 정말 맛있는 라멘집이 있다.
이곳을 알게 된 것은 어느 파리 유학생 블로그를 통해서였는데 그 주변 가이드북에 소개된 라멘집들에 비해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면서 깔끔한 맛을 내는 곳이다.
이곳 역식 줄 서서 먹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지만 관광객보다는 확실히 파리 현지인들이 많이 찾았고
파리에서 거주하는 일본인이나 파리에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많이 찾아 오는 듯 했다.
메뉴도 간결하다. 간장 라멘과 미소 라멘. 그리고 토핑들이 전부다.
라멘을 먹고 '감동'이라는 표현을 쓴 건 처음인데 이 집의 라멘은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그 감동을 좌우하는 건 다름 아닌 마늘!
마늘을 넣지 않고 먹는 국물과 마늘을 넣고 먹는 국물의 맛은 천지차이다.
마늘을 넣지 않은 국물이 담백하기만 했다면 마늘을 넣는 순간 조미료를 아낌없이 넣은 것 마냥
국물 맛이 확 살아난다.
마늘을 넣은 국물을 먹은 후에 나도 모르게 "캬~~"라며 진실의 소리를 내고 말았다.
마늘은 테이블에 마늘을 부수는 기계와 함께 준비되어 있다.
마늘을 넣느냐 아니냐는 고객의 선택!
하지만 제발 꼭 마늘을 넣기를 간절히 바란다. 라멘의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이곳의 라멘 역시 일본에서 먹었던 것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곳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고 가는 길만 기억나서 같은 숙소에 있던 유학생에게
지도를 그려주며 꼭 가보라고 부탁한 적도 있을 정도로 맛있는 곳이다.
3. 파리의 쌀국수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고 그 이유로 프랑스로 이민 온 베트남 사람들에 의해
자리 잡은 식문화가 바로 쌀국수다.
맛이 꽤 좋아서 한동안은 파리의 쌀국수 맛집을 찾아다녔던 적도 있다.
대체로 베트남 사람들이 운영하는 쌀국수집이 많고 현지인들도 줄 서서 먹는 곳들이 많다.
아직 베트남에 가보진 않았지만 한국의 쌀국수보다
파리의 쌀국수가 훨씬 더 베트남 현지 맛과 비슷하다는 평이 많다.
보통은 가이드북에 나오는 할리우드 유명 배우가 다녀 갔다는 13구의 Pho14를 많이 가는데
내가 추천하고 싶은 곳은 3구에 있는 '송흥'이라는 쌀국수집이다.
이곳을 알게 된 것은 프랑스에 살고 있는 한국인의 SNS를 통해서다. 이미 현지에서는 유명한 곳.
요즘 슬슬 한국 관광객들에게도 유명해지고 있는 듯하다.
이곳에 들어가면 주인은 거두절미하고 물어본다.
"포?(Pho) 보분?(Bo Bun)?"
포(Pho)는 쌀국수고 보분(Bo Bun)은 고기와 채소를 곁들인 비빔 쌀국수다.
"포..(Pho)"
"큰 거? 작은 거?"
"큰 거..."
이렇게 그릇 사이즈까지 정하면 메뉴 주문은 끝이다.
프랑스어도 영어도 잘 모르는 나 같은 여행자에게는 아주 심플하고 군더더기 없는
메뉴 주문이 아닐 수 없다.
주인장의 쿨함과 자신감이 묻어나는 메뉴 주문이랄까.
이곳은 쌀국수와 보분 단 두 가지 메뉴에 그릇의 크기를 정할 수 있다.
메뉴가 두 가지뿐이라 조리시간도 빠르다.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쌀국수가 내 앞에 놓였다.
파리에서 쌀국수를 먹으면 한국의 쌀국수처럼 묵직한 국물 맛보다는 좀 더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국물의 시원함의 깊이가 다르다. 고수와 민트를 섞어놓은 조합은 개운함까지 선사해준다.
파리의 분위기에 취해 몇 번의 만취 후 해장을 위해 이 쌀국수집에 가곤 했다.
프랑스에 사는 지인분이 해장으로 쌀국수를 먹는다는데 그 말이 이해가 갔다.
깔끔하고 시원한 국물이 알코올로 혹사당한 속을 달래주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쌀국수에 듬뿍 올려진 숙주는 숙취해소에 좋은 음식이니
우리의 해장법이 영 엉터리를 아닌 것 같다.
4. 프랑스에서만 마실 수 있는 술 모나코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한인이 운영하는 숙소에서 지낸 적이 있다.
지인 찬스로 온갖 혜택을 다 받으며 지냈었는데 바람이 엄청 불던 어느 날, 입고 나갔던 치마가 거추장스러워
다시 숙소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가다 주인 분과 마주쳤고 감사하게도 점심식사에 나를 초대해 주셨다.
프랑스 현지인이 추천하는 13구의 맛 좋은 쌀 국수집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Pho14가 아닌 다른 곳이다)
차를 마시러 갔는데 그곳에서 프랑스에서만 먹을 수 있는 독특한 음료를 경험할 수 있었다.
마치 마녀의 마술이 담겨있을 것만 같은
영롱하도록 빨간 그 음료를 한 모금 입에 넣고 꿀꺽- 넘기는 순간 내 눈이 번쩍 뜨였다.
머리 위로 빨간 별빛이 쏟아지는 듯했다.
달콤하고 톡 쏘는 맛이 처음 마셔보는 맛이었다.
'모나코'라는 술이었다.
파리의 물랑 루주를 닮은 모나코는 맥주에 딸기 시럽을 넣어 만든 술인데
프랑스에서만 먹을 수 있다고 했다.
파리의 웬만한 레스토랑에서는 모나코를 판매하고 메뉴판에 없어도 모나코를 주문할 수 있다.
그러니 메뉴판에 모나코가 없어도 당황하지 말 것.
"여기 모나코 있니?"라고 물어보면 웨이터는
"너 뭘 좀 아는구나?"라는 표정으로 윙크를 날려줄 테니까.
레스토랑마다 레시피가 달라서 맛은 다 다르다.
어떤 곳은 정말 달짝지근해 사탕을 먹는듯하고 어떤 곳은 맥주의 맛이 조금 더 강한 곳도 있다.
모나코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파리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이지만 아직 그때 13구의 레스토랑에서 마셨던
그 모나코만큼 강렬한 모나코를 마셔본 적은 없다.
조심해야 할 건,
달콤하기 때문에 술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는 것. 그래서 쉽게 취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뭐 어떠랴. 파리인데!
파리의 낭만에 취하느냐 모나코의 달콤함에 취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