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실리콘밸리 프레임워크가 그대로 적용되기 힘든 이유.
많은 한국 창업자들이 실리콘밸리 방식을 따라하면 글로벌하게 성공할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1️⃣ 문화적인 차이
한국은 대놓고 셀프 PR/어필하는 문화가 아직은 아니다. 우리는 아직 겸손을 덕목으로 삼기에, 솔루션을 판매하는 영업직을 그리 존중하지 않는다. 그런데 소프트웨어 회사로 성공하려면 결국 Enterprise 영업을 해야 한다. 이게 학벌, 대기업 인맥이 없는 사람이 영업하기에는 정말 쉽지 않다. 그래서 우회적인 세일즈를 많이 해야 한다 — 블로그를 엄청 쓰던가, 고객사만 쓸 수 있는 기능을 대거 만들어서 사실상 영양가 없는 SI 프로젝트를 얹어간다던가.
→ CTA: 한국에서 영업하려면 "누구 소개로 왔습니다" 한 마디가 콜드메일 1,000통보다 강하다. 한국에선 무조건 Warm Intro, 그리고 차근차근 신뢰를 쌓는 레퍼런스 마케팅이 답이다.
2️⃣ 시장 크기의 차이
고객 풀 자체가 작다.
한국은 콜드메일 한번 돌면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고, 금방 고객들이 학습해서 다시는 콜드메일에 반응하지 않는다.
→ CTA: 한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대량 콜드메일, 나는 극구 반대한다. 한국에선 전형적인 Warm Intro, 혹은 매우 세심한 Enterprise/Solution Sales가 훨씬 더 롱런하기에 좋다. 실리콘밸리의 ICP, Winning Scenario 등 세심한 세일즈 프레임워크를 적용하는 게 맞고, 무턱대고 Cold Sales 프레임워크 가져와서 똑같이 돌리면 큰 코 다친다.
3️⃣ 채용시장의 성숙도
아직도 개발자 연봉이 실리콘밸리만큼 충분히 높지 않다. 그러다 보니 월 천~이천만 원짜리 소프트웨어를 살 바엔, 사람을 뽑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쉽다. 충분히 이해된다. 사업은 결국 경제적이어야 하고, 사람을 써서 비슷한 효율이 나온다면, 차라리 TIPS 자금 받고 정부 지원 받아 인력을 늘리는 게 더 낫다. 나 역시도 초기에는 소프트웨어보단 인력 채용에 더 큰 비중을 뒀다. 또 한 가지 — 미국은 퍼포먼스가 안 나는 직군을 빨리 해고할 수 있는 구조라서, 시장이 얼어붙으면 세일즈와 R&D만 남기고 중간에 있는 HR이나 Operation 롤들을 빠르게 줄이고 소프트웨어로 대체한다. 한국에선 이게 잘 안 된다. 작은 기업에도 인사 담당자 등이 있는 경우가 많고, 결과적으로 Burn이 매출 대비 높아진다.
→ CTA: 한국에선 무작정 SaaS 자동화를 밀어붙이기 전에, 먼저 "이 팀이 지금 이 소프트웨어를 대체할 준비가 되어 있나?"를 냉정하게 봐야 한다. 사람과 프로세스를 먼저 정비하고, 그 다음에 소프트웨어로 치환하는 게 순서다.
4️⃣ 정책과 시장 관성
한국은 아직 SaaS 구독 기반에 대한 시장 신뢰가 부족하다. 대부분이 '우리 소유'를 원한다. 그래서 영업도 자연스럽게 "이거 한번 사면 끝!" 식으로 간다. 실리콘밸리에선 SaaS로 전환 못 하면 투자 못 받는다. 한국에선 오히려 "한번 사주세요" 하고 끝내는 게 더 빨리 매출을 만들어낼 때가 많다. SaaS MRR 지표보다 단발성 매출, 혹은 초기 구축비+유지보수 구조가 오히려 VC나 대기업이 평가할 때 더 선호되는 경우도 있다.
→ CTA: 한국에서 SaaS를 무조건 구독 모델로 고집하기보다는, 초기엔 하이브리드 접근을 고민해야 한다. 구축형(One-off)으로 들어가서 신뢰를 얻고, 이후에 유지보수나 업셀로 자연스럽게 구독 모델을 전환하는 전략이 더 현실적이다.
결론.
나는 한국 스타트업들이 무작정 실리콘밸리 프레임워크를 베끼는 걸 경계한다.
대기업 출신, 학벌 네트워크, 정책 지원, 작은 시장 크기, SaaS 신뢰 부족 등, 이 모든 걸 고려하면, 한국은 한국만의 맥락과 생태계가 있다.
프레임워크는 복붙이 아니라, 현지화가 필요하다.
진짜 실리콘밸리 정신은 'Framework Copy'가 아니라, '자기 Context에 맞게 Iterate' 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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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Palo Alto.
· 실리콘벨리를 품는 창업가들을 위한 영어 뉴스레터 - https://lnkd.in/gK67Fw_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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