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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채우지 않는게 꽉 채우는거다.

· 창의성과 빌딩의 역설.

by Peter Shin


뭔가에 홀린듯 구매한 런던베이글 창립자 Ryo의 Essay집. 책의 반이 비어있는 수필집인데도, 그 비어 있음이 오히려 더 많은 걸 채워주고 있다. 작지 않은 울림을 주는 문구들이 많아서 혹시나 하나라도 남겨질까 열심히 필사도 해댄다.


와이프와 런던에도 재작년쯤 다녀온터라 뭤도 모르고 공감하려 하지 않는 소심한 명분 비슷한게 있어 다행스럽게 책과 교감한다.


너무나도 신선한 비주얼과 컨셉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사람들을 가까이 보면, 그들의 공통점은 무언가를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언가를 비워낼 줄 아는 사람이다. 이들의 공통점을 몇가지 꼽자면,


1️⃣ 첫째, 단순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병적으로 싸운다.

단순한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를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왜냐면 뭘 시끄럽게 해야 보이는 건데 볼수 있는게 없으니까. 자기 혼자 말도 안되는 상상, 고뇌, 계획을 하며 끝끝내 뭔가 하나를 툭 내뱉고는 삶을 이어 살아가는데, 이들의 복잡한 생각과 혼돈은 정리되지 않은채 삶 밖으로 좀처럼 쉽게 나타나지지 않는다.


세상은 자꾸 채우라 하지만, 이들은 자신만의 침묵과 루틴을 지키려 발버둥 친다. 그래야 아이디어가 자연히 떠오른다. 창의성은 열정의 부산물이 아니라, 잡음 없는 삶의 부작용이기에.


뭔가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선 혼자만의 시간들을 견딜수 있어야 하고, 좋아해야 한다. 가히 병적이어야 한다.


2️⃣ 둘째, 비워져 있는 나를 참지 못한다.

단순하게 살기는 고요한 사람이 아니라, 지독히 싸우는 사람의 결과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이들은 생각이 비워져 멍 때리는 순간들을 견뎌내지 못한다. 이런 의미에서 의미, 일 중독자들이고, 어쩌면 비관론자 또는 바로 이면에 낙관론자, 이상주의자를 횡보하고 있는 중일수도 있으리라.


이들은 무의미한 순간조차 견딜 수 없기에, 결국 의미를 만들어내버린다. 이들의 창의력은 천재의 재능이 아니라, 습관화된 집착의 구조다.


참고로, 무언가를 참지 못하는건 강박인건데, 이런 이들의 무한 고민루프 습성은 오랜시간 홀로 단련해 만들어진 결과물이고 거대한 시스템이다. 그 누구도 이들처럼 병적인 생산성을 그저 타고나는 경우는 쉽게 있을수 없다. 그런 유전자는 있을수 없지 않나. 이건, 스스로 고민과 번뇌를 채웠던 수많은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을 열댓번 경험해봤기에 선택하는 일종의 계산된 베팅에 가깝다. 고민을 위한 고민, 고통을 위한 고통을 추종했더라면 이들 끝에 창의적인, 그러니까 어떠한 문제가 혁신적인 방법으로 풀리거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결말로 맺어지지 않았을테다.


3️⃣ 셋째, 그 누구보다 두려워하기에, 그 누구보다 자주, 그리고 대담한 베팅을 해야함을 잘 안다.

그렇다. 눈이 왕방울 만한 이들은 그 누구보다 세상의 위험과 두려움을 타고나게 잘 감지한다. 그래서 더 자주 불안하고, 더 빨리 움직인다. 그리고 그 만큼 두려움의 약점도 잘 안다. 나를 두렵게하는 그것은 엥간한 베팅으로 해결되지 않는걸 안다. 그렇기에 수만번의 고민보다 더 빠른 실행의 중요성을 본능적으로 잘 이해한다.


무언가 즉흥적으로 실행하려면 꽉 채울수 없다. 꽉 채우면 무거워진다. 더 빨리 침체한다. 그래서 비워내기를 이악물고 반복하는데 필사적이다. 그래야 두려움을 이길수 있다.


결국 이들의 창의성은 가벼움을 유지하기 위한 생존 본능이다.


결국,


채우기 전에 자주 스스럼없이 비워내는 법을 아는 창업자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게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오늘도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꽉 채운 일정표를 자랑하지만, 진짜 창의성은 텅 빈 일정표 한 칸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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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얼마전 다녀온, London Bagel Museum.


· 실리콘벨리를 품는 창업가들을 위한 영어 뉴스레터 - https://lnkd.in/gK67Fw_u


· 20대가 경험을 아껴서 살아야 하는 10가지 이유. - https://lnkd.in/gaYYsy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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