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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힘찬 Jun 11. 2017

제주 체류 7일차

감성작가 이힘찬

제주에서의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다.
아름다운 일출이나, 어여쁜 벚꽃,
아니, 내가 좋아하던 모든 순간들이
잠깐 머물고 금세 떠나간 것처럼.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는 시간이,
그날을 기다리던 시간보다 몇 배,
몇십 배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서울에서의 하루와 비교하면
이곳에서의 하루는 너무도 빠르다.
그렇다고 서울이 싫은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의 하루가 빠른 이유는,
아마도 마음가짐 때문일 것이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왔다.
어떻게 생활할지도,
어떤 것을 얻어 갈지도,
계획하지 않았다.

그게 제주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는, 주어진 하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무엇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혼자이면 혼자인대로,
함께이면 함께인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신기하게도 머리를 쓰지 않고
복잡한 것들을 다 내려놓으니,
오히려 더 많은 것이 손에 잡혔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내려놓음 속에서 자연히
그 답들이 하나둘씩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


우리는 너무, 쫓기며 살아간다.
우리는 너무, 쫓으며 살아간다.

매번 제주에 올 때마다
무슨 일로 가느냐는 질문에,
그냥 숨 쉬러 가요-라고 답했던
내 짧은 농담처럼.

지금 우리 삶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아무것도 짜여지지 않은,
빈 공간-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이것저것 강제로 끌어다가
내 상자를 가득 채워놓았는데,
그곳에 또 무엇이 들어올 수 있을까.

여행은 바로 그 빈 공간을 만드는
나를 위한, 나만의 시간일 것이다.
이것저것 쑤셔 넣어 채워놓았던
내 상자를, 마음껏 비워버리는 과정.

다시 채우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그렇게 걷고, 만나고, 마주하는 동안
세상이 그 상자를 채워줄 것이다.

의도할 필요도 없고,
계획할 필요도 없다.

-

이제 고작 일주일이다.
그런데, 나는 이미 그 상자를
반쯤 비웠을지도 모르겠다.

2017.06.10 - 에세이 작가 이힘찬

#제주체류 6,7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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