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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힘찬 Jun 12. 2017

제주 체류 8일차

감성작가 이힘찬

아침 일찍 버스에 올라탔다.
그런데 요즘 너무 긴장감 없이
하루 하루를 보낸 탓인지
깊게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알 수 없는 곳.
내가 내릴 곳은 한참 지난 곳.

창밖으로 저 앞을 바라보는데,
높이 솟은 나무들 뒤로 보이는 것이
하늘인지 바다인지,
그걸 알 수 없다는게 재밌어서
아, 지금 여기 제주구나 싶어서
내릴 생각은 안 하고 또 웃기만 했다.

낯선 곳, 낯선 길에 내렸다.
일을 하러 가는 길이었거나,
약속 장소에 가는 길이었다면,
속이 상할 법한 상황인데,
오히려 마음이 들떴다.

그대로 아랫길로 쭈욱 내려가서,
해안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원래 가려던 곳에 도착할 때까지
거센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머리며 옷이며 가방, 카메라가
바람에 밀려 나를 끌어당길 정도로
강하게 부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사진도 영상도 찍지 않고,
걸음 걸음에만 집중했다.

전에도 한 번 그랬었지만,
이번에도 같은 결론.
때로는 무작정 잠에 빠져
목적지를 지나쳐도, 좋다.

-

제주에 올 때면 항 상 들리는 곳.
사람은 없지만, 사람의 흔적이 가득한 곳.
종이를 만져보면 온기가 느껴질 정도로
공간 자체만으로 감성이 쏟아지는 곳.

무인카페 '산책'

이름 탓인지, 나는 항상 그곳에 들려
사람들이 남겨놓은 흔적 속을 거닌다.

작은 종이 위에 담겨 있는
그 수많은 감정들을 읽으며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고,
때로는 위로를 받고, 힘을 얻고,
때로는 사랑에 빠진다.

그래! 내가 쓰는 이야기들이,
내가 쓴 책이 이랬으면 좋겠어.
그런 생각으로 밝게 웃으며,
카페를 나왔다.

-

돌아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
낡은 정류장에 앉아서
두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그게 뭐 어려운 일인가.

나는 사랑하는 이를 만나려고
몇 시간 전부터, 아니 며칠 전부터
정신없이 움직이던 바보가 아닌가.

2017.06.12 - 에세이 작가 이힘찬

#제주체류 8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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