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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힘찬 Jun 14. 2017

느리게 걷기

감성작가 이힘찬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가,
내 앞으로는 바다가 보이고
내 뒤로는 공항이 보이는 곳,
도두봉 도착했다.

계단을 따라 오르다가
샛길이 보이길래,
늘 그랬듯 그 길로 빠졌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풍경만이 보이는 그 길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바다를 바라보고,
나뭇잎 사이로 공항을 바라보고,
잠깐 머뭇거리며 나를 보기도 했다.

-

조금 더 걷다 보니 어느새
도두봉 꼭대기.
나는 가볍게 한 바퀴 빙- 돌고서는
의자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몇 걸음 안되는 낮은 오름이어서
조금도 힘들지 않았지만,
그렇게 편히 앉은 채로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는 어느 여인의 모습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여서,
나도 흉내 내고 싶었던 것 같다.

-

돌아오는 길에도, 버스 대신
천천히 걷는 것을 택했다.

파랗게만 보이던 왼쪽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어가는 때에는
걸음을 더 느리게 걸었다.

아니, 때로는 우두커니 서서
시간을 끌기도 했다.

오래도록 지그시 바라보다 보면
나도 그 모습에 서서히
물들어가기 마련이니까.

풍경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때로는 파랗게, 때로는 주황빛으로,
사람에게, 당신에게,
물들어가고 싶어졌다.

2017.06.13 - 에세이 작가 이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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