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제주x제주

제주에서 '효리네민박'을 본다.

에세이 작가 이힘찬

by 이힘찬

지금 나는 제주에 살고 있다. 작년에 7개월을 체류하고, 지난달 초에 제주로 이사를 왔으니 제주와 가까워진 지는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즉, 아직도 매일매일 제주를 배워가고 있다는 말이다. 제주 체류에서 제주살이가 되고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제주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다. 작년의 나는 확실히 '여행자'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삶을 시작하고 나니, 여행자보다는 '학생'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제주에서의 일반적인 생활부터 시작해서 곶자왈과 오름들, 수많은 섬이며 독특한 지형들까지 궁금한 것들이 너무 많고, 겉으로만 알고 있던 제주에 관한 정보들에 대해 이제는 더 깊이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가득하다. 그러니까 지금의 나는, 열정적인 제주 신입생이다.

다시제주3.JPG 이호테우 포구에서 바라본 이호테우 해변과 한라산 - 사진 : 이힘찬

여행이 아닌 생활이다 보니,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패턴을 갖추느라 아직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집에서 작업을 많이 하기 때문도 있지만, 도와줄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는 서울이 아닌 낯선 땅에서 자유롭게 생활하기에는 아직 현실적으로 불안정한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사 온 직후에는 4.3에 대한 공부를 했다. 오기 전부터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던 부분이지만, 여행지가 아닌 터전으로 자리 잡기로 마음먹고 보니 더 신경이 쓰였다. 관광지가 아닌 이 제주라는 '우리의 땅'에 어떤 아픔이 있었는지에 대해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4월 3일, 4.3 70주기 추념식에 지인 작가들과 함께 참석했다. 추념식에 가기 몇 주 전, 가수 '이효리'씨가 사회를 본다는 얘기를 얼핏 들었다. 추념식 당일, 문재인 대통령님 외에 많은 연예인들이 그 자리에 함께 했고, 사회는 아니었지만 이효리 씨도 그 자리에 참석했다. 그녀는 추념식에서 세 편에 시를 낭독했다.

LHC_9881.JPG 제주 4.3 평화의 공원에서 있었던, 4.3 70주기 추념식
LHC_9905.JPG 제주 4.3 평화의 공원에서 있었던, 4.3 70주기 추념식

온라인을 둘러보니 그녀의 추념식 참석에 대해 이런저런 불평 섞인 말들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만큼은 그녀의 참석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4.3에 대해 아직도 깊이 알지 못하지만, 하나씩 배워가면서 필요한 부분에 있어서는 나도 글과 그림으로 아직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참석 역시 그러한 역할을 충분히 하지 않았을까.

43모두.jpg 제주 4.3에 상징인, 동백꽃
43동백.png 제주 4.3에 상징인, 동백꽃

이효리 씨의 제주 라이프는 오래전에 블로그로 많이 알려졌고,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 표현으로 한동안 고생을 했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이따금씩 그 관심에 대한 불편을 겪고 살지도 모르겠다. Jtbc에서 ‘효리네민박’을 시작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조금 놀랐었다. 아, 사람들이 그토록 궁금해하니까 차라리 보여주는 것을 택한 것일까? 연예인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새로운 불편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했던 것 같다. 프로그램의 반응은 생각보다 좋았고, 그 방송은 이효리 씨의 집을 궁금해하던 사람들만이 아닌, 제주를 좋아하는, 제주에 이곳저곳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정보를 전달해주었다.

다시제주2.JPG 협재 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비양도 - 사진 : 이힘찬

그리고 지금, 효리네 민박 시즌 2가 방영 중이다. 나는 매년 제주를 여행했고, 작년에는 7개월이나 제주에 있었으면서도 효리네 민박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TV를 잘 보지 않는 탓도 있었지만, 그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하면 제주에 머무는 동안 나의 행동 패턴에도 영향을 끼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좋은 풍경을 가진 곳들이 방송을 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놓고 좋은 풍경을 사진 속에 담아 글과 함께 올리는 내 행동은 조금 아이러니지만… 아무튼 육지에 있을 때, 누군가에게 소중한 공간들이 지나친 관심으로 훼손되어 가는 모습을 많이 봤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핑계들로 의도적으로 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 제주에서의 삶을 시작한 지금, 제주를 배워가는 신입생인 나는 넷플릭스를 통해 열심히효리네 민박 시즌 1을 시청하고 있다. 그냥 시청하는 게 아니라, 한 편 한 편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줄어가는 게 아까울 정도로 애정을 갖고 시청하는 애청자가 되었다.

20170731_150607_6879.jpg 출처 : JTBC 홈페이지 '효리네 민박' - 민박집 관찰 일기

보는 내내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했다. 어라, 생각보다 재밌네?부터 시작해서 아, 이걸 왜 이제 봤을까. 아 저곳은, 아 또 저곳은.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반응을 할 때가 많다. 이미 1년 전에 촬영했던 곳인데, 마치 같은 시간대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반응하는 스스로를 보며 조금 민망할 때도 가끔 있다. 방송 배경이 내가 좋아하는 제주라서인지, 아니면 지금 내가 같은 제주라는 땅에 있어서인지, 각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장소 하나하나가 참 반갑고 흥미롭다. 아니, 그것보다는 그 안에 민박하며 어울리는 게스트들의 모습을 보며, 내가 작년에 체류 프로그램을 통해 제주에 머물면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머물며 여행하고 감정을 나누던 때가 떠오르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20170731_150722_2481.jpg 출처 : JTBC 홈페이지 '효리네 민박' - 민박집 관찰 일기

작년 제주에서 체류하는 동안 나는 매달, 새로운 직업, 새로운 성향을 가진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한 달씩 어울리며 많은 추억들을 남겼다. 때로는 모여 앉아 수다를 떨면서 크게 소리 내어 바보처럼 웃었고, 때로는 펑펑 울며 누군가의 옷깃으로 눈물을 닦아내기도 했다. 비가 쏟아지는 날 바다에서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닌 날도 있었고, 함께 높은 오름에 오르다가 지쳐서 그 자리에 멈추어 트로트를 틀어놓고 춤을 추었던 일, 누군가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뜨겁게 노래를 부르거나 젊은 남녀가 애틋한 사랑에 빠지는 일도 있었다. 그런 만남, 그런 시간들이 서로에게 어떤 감정을 남기고 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잘 알기에, 효리네 민박을 보는 내 마음이 더 애틋한지도 모르겠다.

12.jpg 2017년 제주 체류중, 6월에 만났던 이들과 함께

여행지가 모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작년에 그 과정들 속에서 내가 느꼈던 것은 '제주니까 이럴 수 있다'라는 것. 효리네 민박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새로운 만남도 친숙하게 느껴지고, 다른 여행지 보다 더 따뜻한 이야기를 남기게 되는 것이 제주라는 땅이 가진 매력이 아닐까.


효리네 민박을 보면서, 가수 이상순 씨의 모습에 많이 놀랐다. 그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분명 예능이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많이 낯설었을 텐데, 참 자연스럽게 대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오히려 이효리 씨 보다 더 적극적인 모습이었달까. 서로 특성이 다른 게스트들의 방문에도 매번 그 특성에 맞춰 대하는 모습이나 안정적인 화법이 처음이라기에는 너무나도 훌륭했다. 일상 속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면서도 주변을 세심하게 둘러보고 챙길 줄 아는 그의 모습이, 참 많이 부럽기도 했다.

20170808_164542_1012.jpg 출처 : JTBC 홈페이지 '효리네 민박' - 민박집 관찰 일기

나는 SBS 예능이었던 ‘패밀리가 떴다’의 애청자였기에, 이효리 씨의 예능에는 익숙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방송을 떠나 있었고, 생활의 패턴 자체가 바뀐 지금 그녀에게 ‘민박집’은 너무도 어려운 설정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그녀가 이전부터 갖고 있던 당당한 캐릭터는 사람들에게 거부감 대신 자연스러운 흐름을 제공해준 것 같다. 지나치게 조심하느라 상대방조차 조심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닌, 오래 걸릴 수도 있는 어색함의 단계를 생략해주는 느낌.


그녀의 첫 표정에는 ‘나 알지? 나도 이제부터 당신 알아’라고 쓰여 있었다. 어떻게 보면 건방지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그렇게 누군가에게 성큼 다가간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특히 굳이 먼저 다가가지 않아도 되었던 일상을 살았을 그녀에게는 더더욱 그렇지 않았을까.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다른 사람에게도 진심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고 챙길 수 있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민박집 회장 이효리 씨의 캐릭터는 그 잠깐 동안 마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그 관계의 거리를, 빠르게 좁히게끔 도와주는 커다란 장점이 되어준 것 같다.

20170731_150645_0236.jpg 출처 : JTBC 홈페이지 '효리네 민박' - 민박집 관찰 일기

효리네 민박을 보는 내내, 내가 저 때 저곳에 있었다면,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내가 손님으로 갔었다면-과 같은 누구나 몇 번씩 했을법한 그런 생각을 하며 열심히 프로그램을 즐기고 있다. 아직 보지 않은 뒷이야기들도, 현재 방영 중인 시즌 2도 궁금한 것 투성이지만 그만큼 아껴서 보고 싶다.


(그래서 스포가 될만한 SNS 글이나 기사들은 열심히 피하는 중이다...)

20170728_135229_9053.jpg 출처 : JTBC 홈페이지 '효리네 민박' - 민박집 관찰 일기

이런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항상 '게스트'다. 계속해서 새로운 게스트가 찾아오고, 그들은 각자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남기고 떠난다. 생각해보면 우리 삶도 비슷하다. 내 삶이라는 이야기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 나와 마주하는 사람들과 새롭게 이어가는 관계들이 아닐까. 나 역시도 작년에 게스트 하우스에서 사람들과 만나며 너무도 많은 이야기를 얻었다. 늘 좋은 만남만 있던 것은 아니지만, 어떤 만남이든 항상 배울 점이 있었다. 그냥 잠깐의 배움으로 끝난 것도 아니다. 그 안에서 새로운 관계들이 형성되어 더 깊은 관계로 이어지기도 했다. 누군가는 각별한 친구를 얻었고, 누군가는 함께 달려갈 동료를 얻었고, 누군가는 좋은 스승을, 누군가는 가족을, 또 누군가는 애틋한 짝꿍을 얻기도 했다.


20170821_111652_5678.jpg 출처 : JTBC 홈페이지 '효리네 민박' - 민박집 관찰 일기
76일차23.JPG 2017년 제주 체류중, 8월에 만났던 이들과 함께

제주에서의 삶을 시작하는 지금의 나에게, 효리네 민박은 좋은 지침서다. 그들이 처음 사람들과 마주하는 모습에서, 그들을 찾아온 이들이 남기고 간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시작하는 내가 배울수 있는 것들이 참 많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제 와서 이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한 게 더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아마 작년 방영 당시에 효리네 민박을 봤다면, 나는 아마 그들이 다녀간 길을 쫓느라 바빴을지도 모르겠다.

20170731_150729_4246.jpg 출처 : JTBC 홈페이지 '효리네 민박' - 민박집 관찰 일기

그냥… 제주에서 효리네 민박을 보니 더 재밌는 것 같다-고만 쓰려다가 글이 길어졌다. 결론은, 지금 이곳 제주에서 보는 효리네 민박은, 아직 불안하기만 한 나의 제주살이에, 기분 좋은 활력소가 되어주고 있다는 것.




감상을 덧붙이자면, 고양이와 강아지를 너무도 좋아하는 내게는 최고의 힐링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화면이 돌아가는 내내 나는 출연자들보다도 순심이나 석삼이와 고실이, 미미와 순이, 모카와 구아나 그리고 삼식이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을 때가 더 많다. 물론, 당장 안아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음이 가끔 괴롭기도 하다.

2018제주 (2).JPG 성산 시흥리 '묘한상점 묘한카페'의 키라와 함께
내사진2-1.jpg 이호테우 포구 방파제에 살고 있는 길냥이와 함께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방문해서 댕댕이와 냥이들을 한 번씩 안아보고 싶다-는, 사심 가득한 제주살이 이작가의 '효리네민박' 감상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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