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에는 답이 없다. 그래서 매력적이긴 하지만 / 이작가
스토리에는 답이 없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아무튼 스토리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물론 그래서 매력적이고, 그래서 더 좋다. 자유롭게 어디로든 뻗어나갈 수 있으니까. 제멋대로인 내 상상 속 이야기나, 나만의 시선으로 해석한 일상 이야기들을 마음껏 담을 수 있으니까, 그게 참 좋다.
같은 이유로, 어려서부터 답이 정해져 있는 과목들은 싫어했다. 뭔가 나를 틀 안에 가두는 느낌이 들어서 숨이 막혔다. 그래서 그런 수업 시간이면 책 밑에 노트를 깔아놓고 소설을 쓰거나 만화를 그렸다. 사실 거의 모든 시간에 그랬지만.. 아무튼 글을 쓰는 것 외에도 내가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했던 이유는, 마음대로 내 세상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글을 쓰고 싶어서 문예창작과로 편입했을 때. 사진이 좋아 잠시 스튜디오에서 일했을 때. 그리고 어느 날 프리랜서로 처음 그림 외주를 받아 작업했을 때. 그때 나는 글이건 그림이건 사진이건, 목적과 대상이 정해진 '일'이 되는 순간 자유를 빼앗긴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지금처럼 그냥 쓰고 싶은 글을 쓸 때가 아니라면, 모든 창작은 간섭을 받게 된다는 것을.
글쎄.. 아무튼, 뭔가 아니야.
겪어 봤음에도, 알고 있었음에도, 한동안 개인적인 에세이와 그림일기를 연재하는데 물들어버린 나는, 또 한 번 그 불편한 감정과 부딪히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 감정은 수학 문제를 틀렸을 때 보다 더 복잡 미묘했다. 수학은 정해진 답이라도 있지, 회사에서 쓰는 스토리에는 정해진 답이 없었고(답은 없는데 답을 내야 하는 아이러니), 그보다 더 무서운 건 판단의 기준도 따로 없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똑같은 글이어도 지난주에 '이건 아니지'였다가, 이번 주에 갑자기 '그래 이거잖아'가 된다거나. 분명 같은 내용인데 내가 썼을 땐 '뭔가 아닌데?'였다가, 상사가 똑같이 썼을 땐 '이런 거야, 알겠지?'가 되는 순간들.. 그저 글 쓰는 게 좋아서 내 방식대로 내 방향대로 열심히 글을 써오던 나에게, 특정 대상에게 통과 받기 위한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괴로운 일이었다.
일단은 뭐.. 이 정도만 해서 보내볼까?
사실 한 명에게 컨펌받아서 끝나는 일이라면, 한 명의 독자를 위한 글을 쓰는 거라 생각하고,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조금 더 노력하면 얼마든지 완성할 수 있다. 그런데 혹시 이 한 명의 독자가 굉장한 기분파라면..? 겨우겨우 이 독자에게 컨펌을 받았는데, 사실은 이 독자는 진짜 독자가 아니고 그저 잠시 훑어보는 사람이고, 진짜 내가 맞춰야 할 독자가 따로 있다면..? 이 사람을 거쳐야 그 독자에게 갈 수 있는데, 그 진짜 독자와 이 사람의 보는 눈이 전혀 다르다면..?
물론 요즘에는 조금 내성이 생겼다. 아니 무뎌졌다고 할까. 내려놨다고 해야 할까..? 처음에는 첫 스토리가 마지막 스토리인 것마냥 목숨을 걸고 퇴고와 퇴고와 퇴고를 거쳐서 들고 갔다가 '응, 아니야. 다시 써와' 한 마디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며 동시에 내 이성의 끈도 와르르~ 무너져 내리곤 했는데. 이제는 애초에 아니야를 생각해두고 글을 쓴다.
그렇다고, 대충 쓰지는 않는다.
그건 또 스스로 용납을 못하는 편이라, 열심히 쓰되 다양한 길을 열어놓고 쓴다. 책을 출간할 때 원고를 다 쓰고 나서 여러 번 편집장의 교정/교열을 받았던 것과 같은 마음으로, 수정의 여지를 남겨두고 또 남겨둔다. 이러한 길 열어놓기가 반복되다보니, 어느새 나는 점점 더 커다란 여지를 남겨두게 된다. 아아, 나는 이제야 사회화가 되어가는 걸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스토리에는 정말 답이 없다. 원래가 그렇다.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누가 어떤 상태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너무 다르고, 나와 어떤 관계의 사람이 보느냐, 어떤 목적으로 보느냐, 다음 컨펌자가 누구냐, 1차 컨펌자와 2차 컨펌자의 관계가 어떠하냐, 지금 나의 입장이 어떠하냐, 1차 컨펌자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냐 등에 의해 매 순간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회사는 원래 그런 곳이고, 나는 돈을 벌기 위해 그 기준 아래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까,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걸 인정하고부터는 나름대로 타협을 하며 하루하루를 잘(..?) 버티고 있다. 그러다 또 완전히 틀에 갇힌, 눈치 보는 글을 쓰게 될까 걱정도 되지만, 어디에도 닿지 않을 것처럼 자유로운 글만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 맞춰 좁혀진 글도 쓸 줄 알아야 할테니.
적응을 하고 타협을 한 것과 별개로, 여전히 나는 회사에서 첫 번째 글을 쓰든 열 번째 글을 쓰든, 많은 에너지를 투자한다. 그건 나를 위해서다. 나에게 컨펌받기 위해서,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서다. 그게 지금 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싶다.
작가와 직장인의 경계에서 계속 글을 써 내려가기 위해 내가 취할 수 있는, 아직도 꿈이란 것을 꾸고 있는 내 마음을 위한 최소한의 방어인 셈이다.
작심삶일 / 글 : 이작가(이힘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