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단어를 보자마자 지금, 내 모습이라 생각했다.
그냥 적당히요.
우리말에서 적당히 만큼 애매한 말이 있을까. 카페 일을 하던 시절 가장 어려웠던 말이다. 많게면 많게, 적게면 적게, 그것도 아니면 아예 빼주세요 처럼 명확한 말이 있음에도 유난히 ‘적당히’를 쓰는 사람들이 많았다. 누군가는 고민하기 싫어서, 누군가는 딱히 상관이 없어서, 또 누군가는 너무 많은 것도 너무 적은 것도 싫어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물론 이따금씩은 ‘사장님 편하신 대로요~’라는 배려도 섞여 있었겠지 싶다.
좋아하는 감정과 관련해서도 자주 등장했던 말이다. 감정 당사자인 둘 사이에서가 아닌,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때 많이 쓰는 말. ‘아니, 그렇게는 말고. 적당히 거리를 유지해야지’, ‘야, 적당히 해 적당히, 그러다가 너..’와 같이 말이다. 쉽게 말하자면 중간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쪽 끝도 말고, 저쪽 끝도 말고, 딱 여기 중간 즈음. 무엇이든 지나치면 과하고, 소홀하면 잊히기 마련이니, 그 사이 중간 즈음에 잘 머물라는 뜻이다.
사실 대체 불가능한 말이기도 하다. 그 적당함을 대체 ‘적당히’가 아니면 뭐라고 표현하겠는가. 그럼에도 내가 그 말을 싫어했던 것은, 그 말의 뜻이 애매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걸 못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언제나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우정도 사랑도, 항상 뒤를 돌아보지도 저 너머를 보지도 않고 무작정 달리곤 했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 혼자 주저앉아서는 서운해했고, 실망스러워했고, 원망하기도 했다.
미련하고 바보 같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조절이 잘 되지 않았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목숨이라도 걸 것처럼 온 에너지를 끌어다 그 감정 하나에 집어넣었다. 주변을, 주변 사람들을 잘 보지 못했다. 어쩌면 그 감정의 대상인 그 사람조차도 제대로 보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만큼 나는 적당히 하지 못 했다. 적당함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지나치게 감정적인 사람, 그리고 또 그만큼 솔직한 사람.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습게도, 지금의 나는 참 애매한 위치에 서있다. 적당하다-라고 표현할 수도 없는, 어디쯤 인지도 알 수 없는 곳. 물론 예전과 달리 어느 한쪽 끝에 치우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게 다행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미적지근해졌다. 꽤나 뜨거운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제법 재미없는 사람이 되었다. 감정도 표현도 글도, 그저 적당히-하는 사람.
환경의 변화 때문이겠지,
그저 잠시 지나가는 시기겠지,
그런 생각들이 유일한 위로다.
슬프게도 나는 지금
내가 그토록 불편해했던
그 적당한 길에 서 있다.
애오라지 :
'그저 그런대로 넉넉히', '넉넉하지는 못하지만' 등 너무 풍족하지도 너무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한 정도를 뜻하는 우리말
작심삶일 / 글 : 이작가(이힘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