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 결정전 리뷰
이 글을 쓰기 전 망설인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 여자 배구는 축구, 야구보다 인기가 없다. 적어도 내 주변을 보면 그렇다. 비교적 최근 열린 도쿄 올림픽만 보아도 같은 날 야구는 공중파에서 방송했지만 배구는 공중파가 아닌 스포츠 채널에서 방송되었다. 팬 사이트에 들어가면 배구 팬이 많지만 일단 내 주변에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나와 가장 가까운 남자친구가 배구 팬이라는 것, 그렇기에 마음껏 배구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함께 경기를 보러 갈 수 있다는 것에 실로 감사해야 할 정도다. 나는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이 잘 아는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다. 굳이 그들이 모르는 이야기를 쓰고 싶지 않았기에 배구에 관해 쓸지 고민했다.
두 번째. 내가 좋아하는 김연경 선수의 안 좋은 말을 보고 싶지 않았다. 고작 브런치 변두리에 위치한 이곳에 누가 관심을 가지겠냐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내가 쓴 글에서 악플러들의 힐난과 조소를 보게 될까 봐 걱정했다. 평소에도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말하는 성격이기도 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말했을 때 주변 사람이 무관심하거나 미워하면 너무나 슬플 것 같다.
그럼에도 '봄'을 떠올리면 올해 새로운 감각, 감정을 일깨워준 여자 배구가 가장 먼저 생각났기에, 용기 내어 이 글을 끝까지 쓰기로 했다. 또 글쓰기 모임에 참가하신 분들은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야 할 테니(?) 그것을 핑계 삼아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슬쩍 써보겠다. 하하.
배구는 가을쯤 시즌이 시작되어 이듬해 4월쯤 상위 세 팀이 결전을 치른다. 이것을 사람들은 흔히 '봄 배구'라고 부른다. 연경 선수가 속한 팀은 정규 시즌에서는 1위를 차지했고, 이후 챔피언 트로피까지 거머쥐기 위해 마지막 챔피언 결정전을 어제 치렀다.
배구는 팀 경기다. 피겨 스케이팅이나 양궁처럼 개인의 역량이 중요한 경기와는 달리 팀이 한 몸처럼 어우러졌을 때의 힘이 가장 중요하다. 난다 긴다 하는 아웃사이드 스파이커(수비뿐만 아니라 마지막 공격까지 책임지는 포지션)도 자기 머리 위로 공을 보내주는 세터가 없으면 공을 때릴 수 없다. 공을 손에 쥘 수 없고 찰나의 순간에 넘겨야 하기에 선수 모두의 노련함과 센스가 필수인 스포츠다.
하지만 어제 2세트부터 팀이 고장 난 로봇처럼 삐걱대기 시작했고, 결국 3세트에 기어이 사건이 터졌다. 연경 선수가 많은 득점을 낸 후 로테이션 때문에 공격을 다른 선수에게 맡기고 후위 자리로 갔을 때, 다른 선수들의 실수가 반복되어 순식간에 역전을 당하고 3세트마저 져버린 것이다. 2세트에서 패배했기에 3세트는 아주 중요했다. 연경 선수가 수비가 강한 상대 팀을 상대로 힘들게 한 점, 한 점 쌓아 올려서 앞서 나가고 있던 경기였는데 다른 선수들의 실수가 반복되어 3세트를 국수처럼 시원하게 말아먹어버린 것이다.
다른 선수들도 얼굴이 상기될 정도로 열심히 뛰었고 승리하고도 싶었을 것이다. 연경 선수와 10살 가까이 차이 나는 선수들이 많기에 실력과 노련함에서 많이 차이가 난다는 것도 팬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경기를 거치고 맞이한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다른 선수들이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주자 나를 포함한 팬들의 간절함은 분노로 탈바꿈했고, 이내 험한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팬 사이트에서는 팬들이 온갖 욕을 퍼부었고 작년 꼴등 앞 6위 팀을 올해 연경 선수가 1위로 만들어줬는데 아직도 긴박한 상황에서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냐, 너희는 승리할 자격이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 정도로 3세트 마지막 경기력은 2023년 내가 본 것 중에서 가장 끔찍한 장면이었다.
감히 연경 선수가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했다. 천재적인 플레이를 선보이고도 빛을 발하지 못하다니. 3세트를 지나 4세트 후반에 이를 때까지 나의 분노는 식지 않았다. 절반은 승리를 포기한 마음으로 차마 경기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엄청난 응원 소리를 뚫는 누군가의 갈라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나만!! 하나만!!!"
예전 '해보자,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 '어려울 거 알았잖아!'에 이은 연경 선수의 간절함이 담긴 외침이었다. 팬들마저 포기하던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응원하는 선수도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데 모르는 척할 수는 없었다. 팬들도 다시 뜨겁게 응원했다.
결국 2점 차로 준우승에 머물렀기에 결과만 보면 실망스럽다. 나 또한 스포츠를 잘 알지 못할 때는 감히 결과만을 보고 그 팀 전체를 판단하고는 했었다. 하지만 어제는 1세트부터 5세트까지 모든 과정을 내 눈에 담았다. 결과가 전부라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나를 포함한 우리는 모든 과정을 보았다. 그녀는 경기가 끝난 후 무릎을 꿇고 주저앉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경기할 때는 환하게 빛이 났다.
스포츠를 보고 울 정도로 생경한 감각을 느끼게 해 준 봄 배구. 봄의 벚꽃에 가장 행복해하던 나에게 또 다른 새로운 감정을 일깨워준 소중한 추억이다.
-프리랜서 김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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