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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경 Jun 24. 2023

새로운 경험, 야구

야구에 관심이 생긴 여자 초보자

<새로운 경험, 야구>


"요새 롯데가 잘한다아이가."


'롯데'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롯데 시네마, 롯데 백화점... 롯데는 다양한 영역에서 사업을 이끌지만, 제가 부산 사람이기 때문일까요? 롯데를 들으면 가장 먼저 부산이 연고지인 야구 구단 롯데 자이언츠와 넓은 부산 사직 야구장이 떠오릅니다. 20대 초반 이후 단 한 번도 야구장에 가지 않았고 야구 시즌을 챙겨본 적이 없으며, 룰을 전혀 몰라서 투수, 타자, 포수조차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저인데도 말입니다. 아마 어릴 적 부모님이 사직 야구장에 자주 데리고 가주셔서 '롯데=야구'라는 생각이 머리속에 깊게 새겨져 있었나 봐요.


그랬던 저에게 어머니가 거의 20년 만에 롯데 야구를 언급했습니다. 함께 족발을 뜯다가 갑자기 말입니다. 롯데가 오랜 기간 야구에서 실적을 올리지 못한 건 알고 있었습니다(야구에 문외한인 저도 이를 알고 있는 걸 보면 정말 그렇게나 못했던 걸까요...?). 그보다, 야구 경기가 없는 월요일은 괜히 적적하다는 어머니를 보면서 저는 '롯데'라는 키워드보다 '야구'라는 키워드에 눈을 번뜩였습니다. 어머니에게 야구 룰을 설명해 달라고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어머니는 야구 경기를 보면서 설명해줘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볼과 스트라이크 등 용어부터 최근 경기, 자신의 생각까지 끝없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엄마, 지금까지 야구 이야기 하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대...


제가 갑자기 벼락이라도 맞아서 야구가 궁금해진 것은 아닙니다. 저는 스포츠 중에 여자 배구밖에 모릅니다. 왜냐하면 저의 최애가 배구 선수거든요. 스포츠에 'ㅅ'자도 모르던 여자가 최애가 생기면서 배구만 연달아 본 것이죠. 유튜브에도 배구 하이라이트부터 분석 영상, 이슈 영상이 알고리즘으로 뜰 정도로 열심히 봤습니다. 하지만 4월에 배구 시즌이 끝나고, 제 인생은 조금 조용해졌습니다. 국내 배구 시즌이 끝나도 국제 경기가 있기에 새벽에 일어나서 챙겨봤지만, 제 최애가 국제 경기를 은퇴한 뒤로 세대 교체한 젊은 선수들이 헛웃음만 나는 플레이를 보여주자 조금 허탈해졌습니다. 이렇게 매번 지는 국제 경기마저도 없을 때가 있는데, 그때 우연히 배구 커뮤니티에서 배구 비시즌에는 뭐 하냐는 질문에 '잠시 야구 보고 온다'라는 댓글을 봤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어머니가 롯데 자이언츠를 언급한 것입니다. 이렇게 쓰다 보니 제가 야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과정이 막 운명 같고 그러네요...?

<아는 선수는 이대호와 오타니>

약 10년 전에 야구를 좋아하는 친구를 따라 사직 야구장에 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표 예약부터 나를 이끌어준 친구에게 고맙네요. 신기하게도 야구 룰을 전혀 모르지만 야구장에서는 아주 신나게 놀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야구장에 들어가기 전에 산 치킨과 맥주가 있었으니까요! 야구장 특유의 탁 트인 느낌과 밝은 불빛(생각해 보니 배구는 실내에서 진행되니 탁 트인 느낌은 없네요), 롯데 팬들의 응원 물결을 보면서 어느샌가 저도 머리에 주황색 비닐봉지까지 두르고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주황색 비닐봉지를 두르고 기념 삼아 사진만 찍었지 야구 룰은 전혀 몰랐습니다. 약 1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야구는 잘 몰랐고, 선수 중에 아는 사람은 이대호와 오타니뿐이었습니다. 이대호는 먹방 유튜브에 나와서 은퇴한 것을 알았고, 오타니는 만다라트 계획표로 유명하고 세계적인 선수라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명 다 어떤 포지션인지는 모릅니다(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투수/지명 타자로 나오네요). 이렇게 모르는 상태에서 인터넷에 '배구 룰'을 검색해 읽어봤자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배구도 처음에 유명 애니메이션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룰을 알았으니 야구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참에, 요즘 절찬리에 방송 중인 '최강 야구'가 떠올랐습니다. 우연히 TV에서 본 이 쇼 프로는 야구에 관심도 없던 저를 30분간 눈을 떼지 않고 경기가 끝난 후 펑고(야구 용어)까지 보게 만든 마성의 프로그램입니다. 저 같은 야구 초보자에게는 야구를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감동, 서사, 재미가 필요합니다. 이 모든 것을 갖춘 최강 야구를 넷플릭스에서 정주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책도 한 권 구했습니다. 제목은 '여자 야구 입문기'. 여자-> 나, 야구 입문-> 나, 이러니 저에게 딱 어울리는 책이지 않습니까? 물론 저는 야구를 하지는 않고 관람하는 쪽이지만요.


야구와 가까워지기 위해 삼성 라이온즈의 팬인 남자친구도 롯데 경기를 보자고 꼬셔서, 자주는 아니더라도 함께 TV 중계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야구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걸까요? 앞서 언급한 어머니에 이어서 남자친구도 들뜬 표정으로 야구를 줄줄 설명했습니다. 자신이 어릴 때 유망주였다는 TMI까지 말하며 그림까지 그려서 저에게 병살타를 설명해 줬습니다. 이 오빠, 금방까지 일하고 와서 힘들다고 한 사람인데... 흠흠, 어쨌든 첫째, 남자친구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고, 둘째, 그가 해준 말들은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남자친구와의 대화 주제에 야구가 추가되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진루'라는 용어를 언급하길래 그 일본어를 직역한 듯한 어색한 용어는 뭐냐며 깔깔대는 저를 희한하다는 듯 쳐다보더라고요. 네, 제 개그 코드가 좀 특이합니다...

<새로운 경험으로 야구를 맞이하라>

야구는 새롭게 경험하기에 좋은 스포츠입니다. 취미로 즐기기에 좋은 스포츠입니다. 저만 야구를 잘 모를 뿐, 야구는 국민 스포츠이기에 야구를 좋아한다고 특이하게 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야구 시즌 때는 제시간에 TV만 켜면 야구를, 야구장을 채우는 응원 소리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야구장의 좌석 비용도 자리에 따라 다르지만 크게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또 저의 경우 야구장이 집에서 가깝습니다. 시즌이 길어서 오랫동안 인생에서 잔잔하거나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야구 시즌은 매년 돌아옵니다. 아... 쓰다 보니 야구는 항상 새로운 팬들을 맞이할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네요.


아직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지만, 언젠가는 저도 야구 경기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세밀한 부분까지 자세히 아는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제가 전문가가 되려는 건 아니니까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저 제 삶이 더 즐거워질 정도로만 야구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알아 나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제가 좋아하는 구단도 생겨서 응원하고, 직관도 하고 싶네요.


어제도 저녁 6시 30분에 야구 TV 중계를 틀었습니다. 투수가 타자에게 공을 던지기 전 잠깐 흐르는 적막한 시간. 예전에는 채널을 돌렸겠지만, 이제는 침을 꿀꺽 삼키며 집중합니다.


이렇게 저를 집중하게 해 주는 야구.

저는 야구를 좋아하게 될 것 같습니다.


-프리랜서 김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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