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일본 소설 <인사(お時儀)>의 첫 부분을 불현듯 떠올렸다. 더 정확하게는 소설 첫머리에 나오는 주인공 야스키치의 "だから「明日」は考えても「昨日」は滅多に考えない", 즉 너무 바빠서 "'내일'은 생각해도 '어제'는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이 어이없게도 몇 년 만에 갑자기 생각났다.
너에게 어제를 비롯한 과거는 깊이 생각해 봤자 성가시고 슬프기만 한 것이었다. 얼마 전 유튜브의 한 영상에서 인간의 기쁜 추억은 금세 잊히고 안 좋고 어둠침침한 기억은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는 내용을 보았다. 감정이 예민한 사람일수록 심하다고 했다. 너는 자신이 예민해서인지 현재와 미래의 일을 준비하면서 자주 과거의 기억에 발목이 잡힐 때가 많다고 느꼈다. 과거의 기억은 주로 나쁜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 과거가 사실이든, 아니든 네 마음속에서 시간이 흐르며 새겨지고 때로는 각색되면서 널 괴롭힐 뿐이었다. 내일은 생각해도 어제는 좀처럼 생각하고 싶지 않던 너에게 이러한 생각은 그저 방해꾼일 뿐이었다.
그래도, 몇 년 만에 일본 소설 <인사(お時儀)>의 문장 하나가 기억난 데에는 어떠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너는 뭐든지 열심히 하지만 새로운 일에는 면역력이 약해서, 무언가를 처음 겪거나 경험하면 종일 그 생각만 나서 힘들어했다. 예를 들면 결혼 준비라든지... 오랜만에 접하는 큰 액수의 돈과 결혼할 사람의 몰랐던 부분, 결혼식을 소개하는 처음 보는 상담 실장, 인터넷에서 본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예식장 등 여러 처음 겪는 일에 너는 진이 빠져버렸다. 그래도 너는 결혼 준비 과정에서 자신이 배우는 게 있으리라 결론지었다.
프리랜서 번역가라는 직업은 너의 삶을 지탱하는 소중한 수단이자 동시에 버리고 싶은 것이었다. 일이 많으면 감사하기도 했지만 지쳤고 일이 없으면 불안했다. 그러나 지쳤다고 생각하면 혹시나 일에 자신의 생각이 무심결에 반영될까 봐 걱정하기도 했다. 디테일이 생명인 일인데 정신 바짝 차려야지, 암. 지치지 않기 위해선 과거의 안 좋은 기억도 없는 편이 좋았다. 현재와 미래를 위해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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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영상에 빠져 사느라 한동안 잊고 지냈던 뉴스는 생각보다 자극적이었다. 지인과 함께 본 뉴스에서는 하필이면 살인과 폭력 사건이 줄줄이 나오고 있었다. 너는 자신이 겪지 않은 일임에도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러나 너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인스타그램, 유튜브의 인기 있는 콘텐츠 댓글 창에는 언제나 익명의 누군가가 비꼬는 댓글이 있었고, 이에 싸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요즘 세상에는 자극적인 일과 사람이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댓글 창 프로 불편러가 밖에서는 멀쩡하게 돌아다니지 않겠냐는 생각에 이르자 너는 속이 메슥거려 황급히 댓글 창을 닫았다. 최근 너는 글의 제목 몇 개만 보고 화면을 꺼버린 적도 있다. 제목만 보아도 다른 성향을 혐오하는 분위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상이 다른 누군가를 혐오하는 글은 언제나 찝찝하고 색깔로 치면 밝지 않았으며 어딘가 병들어 있었다. 우리는 대혐오의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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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사랑
영원히 영원히
FEEL PLAY LOVE
STAY WITH ME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자우림 노래 제목들
영원, 영원, 영원... 아름다운 단어를 떠올렸을 때 너는 처음에는 영원이라는 단어만 생각났다. 너무나 우연히 몇 년 전 발매된 자우림 노래를 듣고 너는 금세 빠져버렸다. 멜로디도 좋았지만 사실 노래 제목이 놀랍고도 마음에 와닿았다. 내일 너를 볼 수 있으니 내일이 너무 멀다느니, 영원하다느니, 사랑한다느니... 분명 한국어인데 왜 이리도 오랜만에 듣는 외국어 같은지,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는 형체 없는 아름다운 단어들이 너는 싫지 않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단어는 또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마침 자우림 노래에 등장한 영원이라는 단어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왠지 울컥했다. 너는 네가 사랑한, 사랑하는, 사랑하고 싶은 것들을 아는 아름다운 단어를 탈탈 털어서 글로 쓰고 싶어졌다. 대혐오의 시대에서도, 그럼에도 사랑과 희망을 말할 때의 기분은 퍽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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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계속 미루었다. 과거를 성가시게 여기는 네가 사랑한, 사랑하는, 사랑하고 싶은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서 글로 구현하기는 쉽지 않았다. 몇 가지 기억이 드문드문 떠올랐지만 그때 느낀 감정을 정확하게 일깨우기 어려웠다.
다행히 다른 이의 글에서 실마리를 발견했다. 너는 하미나 작가의 '글을 쓰는 방식에 건축적 글쓰기와 물 같은 글 쓰기가 있는데, 건축적 글쓰기는 머리로 쓰고 물 같은 글쓰기는 몸으로 쓴다'는 내용을 보고 몸, 즉 마음이 이끄는 대로 쓰는 글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날 저녁, 어김없이 일하다가 잠시 브런치 스토리에 들어갔다. 글쓰기 창의 하얀 공백이 나의 글을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로 미리 생각하지 않고 마음을 내뱉으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이 문장까지 왔다.
대혐오의 글은 머리에서 최대한 논리적인 척 짜맞추고 쓰지만 사랑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써야 하는 걸까. 너는 마음으로 쏟아내듯이 글을 쓰다가 저릿한 마음을 느끼며 깨달았다. 지금 내가 쓴 글은 가장 여린 마음에서 나왔다는걸. 사회 속에서 때로는 마주하고 때로는 도망치며, 일명 '사회화'가 되며 현실 속에서는 필요없다고 묻어두려 했던 여린 마음. 그곳에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고 사랑하며 사랑했던 마음이 있었다. 이 마음으로 글을 쓰면 -내가 영원히 사랑하고 싶은 것들-이라는 주제의 글을 이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용기가 조금 샘솟았다.
너는 여기까지 쓰고 자우림의 FEEL PLAY LOVE를 중얼거렸다.
오늘은 연인이 되자
죽을 듯 사랑해 보자
어렵지 않아 마지막을 모를 뿐...
더 좋은 어른이 되자
잘 웃는 사람이 되자
어렵지 않아 바보처럼 보일 뿐...
죽을 듯 사랑하고 잘 웃는 사람이 되고 싶은 너는 글을 계속 쓰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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