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부업 강사의 시간
25X8 수업이 짜릿했다면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짜릿한 에피소드다. '짜릿하다'는 좋을 때 자주 쓰니 '저릿하다'에 가까우려나? 일단 짜릿하다를 검색해보니 "심리적 자극을 받아 마음이 순간적으로 조금 흥분되고 떨리는 듯하다."라고 나온다. 이번에는 너무 당황해서 흥분하고 떨린 순간이다. 유명 개그맨도 사람이기에 365일 웃기는 데 성공할 수는 없다. 최고 연봉을 자랑하는 배구 선수도 100% 스파이크에 성공할 수는 없다. 그러니 광활한 우주 속에, 지구 속에, 아시아 속에, 한국 속에, 부산 속에, 작은 동네에 사는 한낱 내가 자주 실패하는 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이기에 휩싸이는 주위 환경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낼 수 있고, 완벽할 수 없다. 하지만 참 얄궂게도 기분 좋은 추억보다 한, 두 번의 실수가 더 선명하게, 자주 떠오른다.
한 여학생이 다행히 이벤트 수업에 크게 만족해 주었다. 오후 9시 수업임에도 열성적이었던 학생과 내 수업이 다행히 잘 맞은 듯했다. 이후 이벤트 수업에 다른 학생의 새로운 신청이 들어왔다. 자기소개가 길게 쓰여 있어 읽어보니 지금까지 자신이 읽었던 책이 가득 적혀 있었는데, 대부분 한국 역사에 관한 내용이었다. 또 자신 앞에서 다른 의견을 내세우거나 말대답하는 선생은 절대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어쩐지 신경이 쓰였지만, 지금까지 첫인상과 다른 학생들도 많이 만났으니 이해하며 마음의 불안을 꾹 눌러 잠재웠다. 그래, 우선 첫 수업을 해보자!
오후 19:00, 수업이 시작되었다. 한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원래 처음에는 한국어 회화 실력을 가늠하기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하는데, 한국어로 말하기를 권했지만 화면에 자기 모습을 비춘 할아버지는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로 길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자기소개를 했는데 선생이 트집을 잡은 적이 있어 자기소개하기 싫다고 했다. 무엇보다 마음에 안 든다는 매서운 표정이 무서워 일단 바로 수업에 들어갔다. 이 학생은 절대 한국어를 쓰지 않고 마지막까지 일본어를 고수했다. 하지만 이 수업은 회화 수업이다. 드라마의 짧은 홍보 영상을 보고, 드라마에서 나온 한국 게임을 이야기하고, 느낀 점을 한국어로 편하게 말하며 배우는 수업이었다. 한국어를 할 줄 안다고 답했으니 한국어를 써도 괜찮은데. 못해도 괜찮으니 도전해 보는 게 좋을 텐데.
"이 수업을 신청한 게 내 실수네. 내용은 안 읽고 제목만 보고 신청했거든."
할아버지 학생은 몇 번이나 나의 앞에서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러기에는 수업 이름이 '드라마를 보고 이야기해 보자!'인데... 이 수업을 준비해 온 나는 허탈해졌다. 아마 내가 혼자 드라마에 나온 장면과 실제 한국 문화의 차이를 소개해주는 설명회로 인식한 듯하다. 상황이 꼬여버렸지만, 이미 시작한 이상 35분간 이 수업은 끌어가야 했다. 그래서 준비해 온 질문을 대답하기 쉽게 물어봤는데 한국어로 권유해도 마지막까지 일본어를 사용했고, 항상 답변의 첫머리는 '내가 거기까지 알 리가 없잖아?', '그게 아니고'였다. 앞에 벽을 두고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다. '그게 아니고', '그건 틀렸고'를 되풀이하며 혼을 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 그저 웃으면서 말을 들어주거나 맞장구치는 일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으면 바로 '그런 게 아니라' 공격이 내 귀에 박히니까 말이다.
나의 한국어 강사 역사상 최초로 겪는 유형의 고객에 35분 수업이지만 이틀 치 체력을 다 뺏긴 기분이 들었다. 놀랍고 무서워서 손이 떨릴 정도였고, 그제야 학생 프로필에 이미 그 학생을 차단한 선생님이 꽤 많다는 기록이 눈에 들어왔다. 겨우 수업이 끝난 후, 컴퓨터에 알림음이 들려 확인해 보니 내 마음은 전혀 모르는 듯 학생이 후기에 '아주 좋음'으로 평가한 것이 보였다.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잘 들어줘서 고맙다는 리뷰와 함께. 학생에게 나쁜 기억으로 남지는 않았나 보다. 이후 이 학생은 나의 다른 회화 수업을 신청했지만, 고민을 거친 후 나는 이 학생에게 한국어 회화를 가르치는 강사로서 책임을 다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결국 죄송하게도 이후 수업은 거절하게 되었다.
수업 이후 학생은 '아주 좋음/좋음/보통/나쁨/매우 나쁨'으로 강의를 평가할 수 있었다. 우려와는 달리 1,000번 이상의 수업 중에서 아주 좋음, 좋음만 받았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단 한 번 '나쁨'을 받은 적이 있다.
수업 이후 자신의 한국어 실력이 낮다는 한탄과 함께 나의 수업 속도가 빠르다고 하는 학생이 있었다. 나와 수업할 때 말하지 않고 메시지와 리뷰에 글로 남겼다. 하지만 학생이 25X5라는 패키지 수업을 신청했기에 계속 만나야 했고, 벌써 수업을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수업 속도를 느리게 하고 한 칸, 한 칸 계단을 오르듯 학생의 손을 잡고 한국어 회화라는 계단을 올랐다. 그러자 수업 덕분에 한국어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며 뿌듯해했는데, 애석하게도 학생의 만족과 한탄의 기복이 너무 잦았다. 몇 번의 기복을 거쳐 또다시 수업을 취소한 것을 보고 다른 강사에게 배우면 더 좋은 결과를 손에 넣겠다는 생각에 이후 수업은 거절했다. 이때 다른 강사의 수업도 들어보는 게 좋겠다는 나의 뜻이 잘못 전달되었는지, 화가 난 것인지 단 한 번 '나쁨'을 표시해 주었다. 아무래도 온라인 수업이고 서로의 국적이 다르다 보니 나의 뜻이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은 듯해 아쉬운 기분도 든다.
1,000번 이상 수업하며 다양한 학생을 만났다. 대면은 아니지만 서로 다른 국가에서 스카이프와 줌으로 만나는 것 또한 꽤 각별한 인연일 테다. 비록 끝마무리가 좀 엉성하거나 온라인 강의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오해를 샀을 때도 있었지만, 직접 나의 수업을 신청해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나의 프리랜서 라이프>
05. 어린이 수업
도전한 후 실패한 적은 많다. 초등학생의 수업을 부탁하는 학부모의 요청을 받아들인 적이 있다. 학생의 실력을 파악하고 새롭게 도전에 임했건만 생각보다 수업이 풀리지 않았다. 자신이 어떠한 계기로 한국어에 관심을 가지게 된 후 공부하는 성인과 달리 공부하기 싫어하는(나도 그랬다) 어린 학생은 어떻게 달래고 가르쳐야 하는지 몰랐다. 학생의 관심사도 물어보며 수업을 이끌어 나갔지만 성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학부모는 수업이 나쁘진 않았는지 마지막에는 개인 메시지로도 문의하며 수업을 신청했다. 하지만 귀중한 시간을 들여 수업을 듣는 학생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더 잘할 수 있는 수업에만 집중하자고 결론지었다. 어린이용 수업을 더 철저하게 준비한 후에 다시 수업하겠다는 말을 전하고 어린이 수업 신청은 받지 않았다.
-프리랜서 김연경
#일본어 #한국어강사 #부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