찹쌀떡
나는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다. 내가 태어난 후 얼마 되지 않아 외할머니는 돌아가셨다고 한다. 형제가 많았던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난 엄마는 유독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컸다. 어렵고 힘들 일이 생기면 늘 꿈속에서 외할머니가 나타나 엄마를 보듬어 주었다고 했다.
그런 엄마에게 외할머니를 대신하는 사람은 큰 이모였다. 시원시원하고 통이 컸던 큰 이모는 엄마를 무척 아꼈다. 공무원 월급에 살림이 빠듯했던 엄마를 위해 어린 우리들의 옷을 챙겨주기도 했고 비싼 과일들을 사서 아낌없이 나눠주기도 했다. 구정이나 추석 날 외갓집 대신 우린 큰 이모집으로 갔다. 우리 집보다 두배는 훌쩍 큰 이층 집에 들어서자마자 고소하고 맛있는 냄새가 넘쳐났다. 큰 이모는 엄마가 좀처럼 사주지 않는 고급 수입과자나 초콜릿이나 사탕들을 우리들의 작은 손에 듬뿍듬뿍 쥐어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엄마의 양 손엔 큰 이모가 싸준 음식들이 가득했다. 막내인 엄마는 그저 엄마 같은 큰언니가 챙겨주는 이 음식들이 당연하게 생각되었을 것이다.
고등학생이 되고 공부가 바빠진 나는 명절에도 큰 이모집으로 가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한참 사춘기 었던 나는 오랜만에 서먹한 친척들을 만나는 것도 갑갑한 외출복을 꺼내 입는 것도 싫었다. 물론, 친척들이 주는 용돈이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큰 이모는 동생 편에 잊지 않고 내 용돈을 챙겨줄 거란 걸 알고 있었으니까.
큰 이모는 명절날에 온 동생들에게 그 옛날 외할머니가 그랬듯이 주먹만 한 찹쌀떡을 만들어 한가득 싸주었다. 엄마는 큰 이모가 준 찹쌀떡을 냉동실에 꽁꽁 얼려 놓고 늦은 겨울밤 출출해진 우리를 위해 하나씩 꺼내 프라이팬에 구워 따끈한 우유와 함께 내놓았다. 피자치즈처럼 쭉쭉 늘어나던 떡과 굵은 팥 알갱이가 씹히는 소를 포크에 돌돌 말아먹으면 너무 맛있었다. 떡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주먹만 한 큰 이모의 찹쌀떡 하나를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 치우곤 했다.
냉장고 청소를 하다가 몇 달 전 누군가의 돌잔치 답례품으로 받은 꽁꽁 언 찹쌀떡이 냉동실에서 발견되었다. 하나를 꺼내 해동시킨 후 프라이팬에 올려 천천히 구웠다. 고소한 떡 냄새가 순식간에 작은 부엌을 꽉 채웠다. 몰랑몰랑하게 잘 구워진 떡을 접시 위에 담아 커피 한잔을 내리고 그 옛날처럼 포크에 말아 후후 불어가며 먹었다.
추억이 생각나는 음식에는 그 사람을 좋아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엄마에겐 엄마가 그리고 우리에겐 외할머니가 되어 준 큰 이모 – 그녀는 그녀의 음식으로 하늘에 계신 외할머니의 마음을 아낌없이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제야 철이 들어 알게 된 외할머니의 마음을 닮은 큰 이모의 찹쌀떡 – 감사하는 손녀의 마음으로 조금 더 맛있게 먹을 걸 그랬다.
<아네고 에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