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샌드 위치
어린 시절, 해가 긴 여름이면 두 살 터울인 동생과 나는 일찍 저녁을 먹고 한참을 걸어 새로 이사 온 아파트 단지의 제법 큰 놀이터로 놀러 갔다. 동그란 타이어를 매단 그네부터 알록달록한 형광색의 시소, 작은 성을 머리에 올린 미끄럼틀, 아이들이 원숭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정글짐, 빙글빙글 정신없이 돌아가는 회전의자까지… 우리에겐 놀이공원 못지않게 신나는 곳이었다. 앞뒤 가리지 않는 호기심과 비누 방울처럼 샘솟는 장난기의 동생은 툭하면 넘어지거나 어딘가에 부딪혀 크고 작은 상처가 났고, 그럴 때마다 엄마는 동생을 주의 깊게 챙기지 않는 내 탓이라며 혼을 냈다. 동생과 함께 어디를 간다는 것은 나에게 엄청난 위험을 떠안은 모험이었다. 머리 위에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책더미를 올려놓고 조심조심 걸어가는 기분이라고 할까?
그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에게 가장 큰 즐거움은 매일 저녁 6시가 되면, 20분씩 방영되는 TV 만화영화를 보는 거였다. 이 만화영화들이 얼마나 재미있었던 지 어서 내일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일찍 잠이 들곤 했다. 그런 나에게 어린이 회관이나 시민회관에서 한 시간이 넘게 상영하는 ‘한 번에 몰아 보기 같은’ 극장판 만화영화들은 절대 놓칠 수 없는, 아니 놓쳐서는 안 되는 기적 같은 선물이었다. 그때 우리 또래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웠고 나 또한 심하게 몰입한 나머지 꿈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독수리 오 형제’가 드디어 극장판으로 제작되어 시민회관에서 상영되었다. 학교에서 영화표를 단체로 구입해서 원하는 학생들에게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팔았다. 나는 모아둔 용돈을 털어 제일 먼저 구입을 했고 하루하루 달력 속 숫자들 위에 빨간 가위표를 그어가며 시민회관 가는 날 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또 동생이 태클을 걸었다. 자신도 가고 싶다는 거였다. 엄마는 동생을 데리고 가는 조건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짜증이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나는 엄마를 이길 수 없다는 것도 동생이 고집을 꺽지 않을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기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러기로 했다.
엄마는 우리를 위해 양념한 소고기와 야채를 잘게 다져 계란 물을 입혀 도톰하게 패티를 만들고 버터로 식빵을 노릇노릇하게 구워 고기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었다. 어깨에 둘러 맨 나의 큼직한 천가방에 엄마는 따끈따근한 고기 샌드위치를 담은 지퍼락 박스와 꼬마 주스 두 병을 넣어주며 동생을 잘 챙기라고 나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그리고 동생에게 얌전히 누나 말을 잘 듣고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강하게 주의를 주었다.
처음으로 동생과 나는 손을 꼭 잡고 두 번씩이나 버스를 갈아타고 시민회관으로 영화를 보러 갔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온통 내 머릿속에는‘또 동생이 까불다가 다치거나 혹은 사람들 속에서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어쩌지? ’하는 가슴 철렁한 걱정들이 맴돌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동생이 내 손을 꼭 잡고 평소와 달리 얌전했다. 버스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어 시민회관에 도착한 우리는 스크린이 가장 잘 보이는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그제야 꼭 잡은 손을 놓았다. 어느덧 시민회관은 아이들로 꽉 차고 영화가 시작되자 들썩이던 아이들의 잡담 소리가 순식간에 싹 사라졌다. 나는 주스를 꺼내 동생의 한 손에 쥐어주고 아직도 따듯한 온기가 남아있는 엄마의 고기 샌드위치 한 조각을 동생의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동생은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크게 한 입 배어 물고 오물오물 씹었다. 나도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고 남은 고기 샌드위치 한 조각을 먹었다. 독수리 오 형제가 악당을 물리치고 지구를 구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동생과 나는 감동의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리고 그 벅찬 감동으로 두근거리는 각자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시민 회관의 문을 나서는 사람들 틈 속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갔다.
동생의 손에서 그리고 내 손에서 끈적끈적하게 땀이 났지만 우리는 손을 놓지않고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꾸벅꾸벅 조는 동생의 머리를 가만히 내 어깨 위에 기대 놓았고,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영화 관람을 끝내고 곤히 잠이 든 동생이 이 순간만큼은 천사처럼 착해 보였다. 창밖은 벌써 어둑어둑 해졌고 밤하늘엔 흐릿하게 별들이 반짝였다. 저 멀리 버스 정류장 앞에 서있는 엄마가 보이자 나는 하차 벨을 누르고 동생을 깨웠다. 버스에서 내려 엄마의 품으로 뛰어가는 동생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텅 빈 지퍼락 박스를 엄마를 향해 환한 미소와 함께 흔들었다.
처음으로 동생의 손을 꼭 잡고 영화관 가던 날의 고기 샌드위치 – 동생이 이렇게 고분고분할 줄 알았다면 마음 푹 놓고 조금 더 맛있게 먹을 걸 그랬다.
< 아네고 에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