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면 사람 노릇이 힘들다

by anego emi


내 아버지는 20년이 넘도록 파킨슨병을 앓고 계시다. 서른을 목전에 두고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 아버지는 정정한 몸과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공항에서 나를 배웅했다.


그리고 2년 후 어느 날, 엄마로부터 세관 공무원이셨던 아버지가 정년퇴임을 하게 되었다는 장문의 편지를 받았다. 퇴임식 날, 단상에 선 아버지의 뒷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는 이야기를 길게 써내려 간 엄마의 편지는 인생이 괜스레 허망해진다고 마침표를 찍었다. 늦은 밤 노란 등불이 달처럼 떠 있는 식탁에서 혼자 편지를 쓰는 엄마의 모습과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스테레오로 들리는 단상으로 걸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그려졌다.


그다음 해 봄,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다시 취업을 했다. 그 전보다 몇 배나 더 바빠진 일로 나는 늘 정신이 나가 있었고, 집으로 그 흔한 안부 전화 한 통을 먼저 하는 법이 없었다. 게다가 명절 연휴에도 마지막 날에 겨우 얼굴을 비추면서 피곤하다는 핑계로 엄마가 차려주는 밥만 딸랑 챙겨 먹고, 틈만 나면 방에 처박혀 잠을 잤다. 그런 나를 향해 가족들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그럴 거면 “차라리 오지 말라”라고 투덜댔지만, 아버지만큼은 내게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굳게 다문 입술은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안다. 네가 얼마나 힘든지. 직장 생활이 어디 쉬운 일이 더냐.’


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에도 가장 나중에 내게 연락을 했다. 새로 들어간 회사에서 혹시라도 자리를 비워서 책이라도 잡힐까 걱정해서였다. 그런 아버지에게 나는 늘 바쁘다는 이유로 무관심했고, 살갑게 먼저 말 한 번 걸지 않았다. 아버지가 파킨슨병을 선고받고 조금씩 거동이 불편해졌다는 언니의 말도 엄마의 걱정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것은 함께 사는 당신들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것만으로 충분히 벅차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내 인생을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자식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해내고 있는 거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솔직히 그 병의 심각성에 대해서 고민해보지도 않았다. 워낙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정신력이 강한 아버지였고, 때가 되면 극복하고 이겨낼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도 아버지의 병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더 나빠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일에서 벗어난 지금에서야 아버지의 병을 들여다봤다. 바쁘면 사람 노릇이 힘들다는 말 그대로, 나는 그동안 딸 노릇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저 바쁜 딸이니까 이해하고 감싸주기만을 바랐다.

이제는 명절뿐만 아니라 아빠 생신이니까, 엄마 생신이니까, 봄이니까, 가을이니까, 크리스마스이니까, 별별 핑계를 만들어 집에 간다.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나를 반기는 아버지를 꼭 껴안으며, 지금까지의 불효와 미안한 마음을 이렇게나마 대신한다. 아버지는 해가 지는 어둑어둑한 거실에서 총기가 사라진 희미한 눈으로 텔레비전을 보며 반쯤 벌어진 입으로 작게 “아하” 감탄사를 연발한다. 이렇게라도 살아서 오늘도 자식들을 볼 수 있는 게 감사하고 행복해서인지도 모른다. 이미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아버지를 자주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진심으로 다행이다.




# tip

직장 상사나 동료를 챙기는 것에 반의반만이라도 가족들을 챙기자. 결국 그들은 돌아서면 남이지만, 돌아서도 남는 건 가족뿐이다. 명심 또 명심하자.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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