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케이크
독거 남 3년 차인 회사 후배는 최근에 카드 포인트를 탈탈 털어 미니 오븐을 사고 주말마다 요리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월요일 아침이면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는 나에게 슬그머니 다가와 자신을‘요섹남’이라 자칭하며 주말에 해먹은 요리들을 자랑했다. 집에서 하는 요리는 라면 끓이는 게 전부인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역시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요리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인정했다.
그가 오븐으로 만드는 요리는 단순한 야채 요리부터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허브에 재운 닭 요리와 갖가지 해산물을 올린 미니 피자까지 다양했지만 최근에 가장 꽂힌 건 생선 구이인 듯했다. 그는 그의 어머니가 한 마리씩 진공 포장하여 보내 준 손질한 생선을 오픈에 구워 내기만 해도 너무 맛있다고 감탄을 자아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이제 당분간 생선구이는 못 먹을 거 같다고 했다. “그 좋아하는 걸, 왜? 이제 어머님이 안 보내 주시는 거야?”하고 묻는 나에게 그는 가볍게 고개를 흔들며 어젯밤에 생긴 끔찍한 일을 나에게 털어놓았다.
그는 술이 취해서 집으로 가면 뭐든지 먹고 자는 게 버릇인데, 어젯밤에는 갑자기 생선구이가 너무 먹고 싶어서 만취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오븐에 생선을 구웠다고 했다. 그런데 생선을 구운 건 기억이 나는데 그다음이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문제는, 아침에 눈을 뜨니 침대 아래에 접시가 엎어진 채 떨어져 있고 하얀 시트 위에 처참하게 조각 난 생선 뼈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고 했다. 이 괴기스러운 상황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필름이 끊긴 것도 모자라 침대 위에서 생선구이를 먹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소름 돋게 끔찍했고, 상황을 그렇게 만든 생선들도 꼴 보기 싫어졌다고 했다. 나는 그 순간 푸하하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에게도 비슷한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고…
그날은 정신없이 몰아치는 일 덕분에 까맣게 잊힌 내 생일날이었다. 누군가의 생일이면 케이크와 간단한 다과를 준비한 생일파티를 하는 게 회사의 원칙이나 그날따라 팀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외근 중이었고, 주인공인 나조차도 하루 종일 회의실에서 나올 수 없었기에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그러다가 저녁 10시가 지나서 퇴근을 하려는 팀원들을 향해, 오늘이 내 생일이란 걸 눈치챈 팀의 막내가 이렇게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우리는 회사 근처 맥주 집에 모여 잔을 부딪히며 몇 시간 남지 않은 내 생일을 축하했고, 늦은 시간이라 생일 케이크를 사지 못한 걸 분통 터져하던 한 선배가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들고 나타났다. 막 문을 닫으려는 가게의 문을 두드려 하나 남은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혼자 늙어가는 후배를 위해 샀다고 하며 나에게 내밀었다. 급하게 마신 맥주와 맥주 집에서 서비스로 준 싸구려 샴페인에 알딸딸해진 나는 선배가 준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꼭 껴안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잘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누운 나는 갑자기 달달한 게 너무 먹고 싶어 졌다. 나는 반쯤 눈이 감긴 얼굴로 냉동실의 문을 열고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꺼냈다. 한 조각 잘라먹을까 하다가 귀찮아져 그냥 몇 숟가락 퍼먹고 말자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케이크를 무릎에 올려놓고 한 손에 숟가락을 든 채로 침대 위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아침에 눈을 뜨자 나는 경악했다. 몽땅 녹아내린 아이스크림 케이크는 이불을 흥건히 적시며 침대 시트로 스며들었고, 바닥으로 흘러내린 토사물 같은 끈적끈적한 아이스크림은 새하얀 양털 카펫 위에 얼룩져 있었다.
나는 서둘러 사태를 수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망측한 꼴을 멍한 표정으로 내려 보다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후배의 생선구이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후배의 생선구이와는 비교도 안될 엄청난 사고를 치고 만 아이스크림 케이크 – 잠들기 전에 한 숟가락이라도 조금 더 맛있게 먹을 걸 그랬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