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통닭
4년간의 도쿄 유학을 끝내고 돌아온 나에게 엄마는 꼭 들어주었으면 하는 한 가지 부탁이 있다고 했다. 조금 늦게 취직을 해도 좋으니 딱 한 달 만이라도 엄마 아빠와 같이 지내자고 했다. 그러고 보니 스무 살에 집을 떠난 후 한 번도 부모님과 같이 살아본 적이 없었다. 그런 딸이 늘 눈에 밟혔던 엄마는 이제라도 짬이 생겼으니 집밥도 실컷 먹고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했다. 나는 새로 살 집도 구해야 하고 이것저것 마음이 조급 했지만 엄마의 촉촉하게 젖어드는 그 눈빛 앞에 마음은 흐물흐물 해졌고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엄마와 같이 아침밥을 차려 먹고 오후엔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모시고 초여름의 기운이 스며든 미지근한 햇살과 바람이 부는 동네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딱히 만날 친구도 없었던 나는 일주일이 지나자 이 단조로운 생활이 금방 지루해졌다. 그리고 엄마가 없는 저녁시간, 아빠와 어둑어둑 해가 지는 휑한 거실에 단둘이 남겨지면, 대화도 없이 썰렁하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어쩔 줄 몰라했다.
아버지는 오후 6시가 되면 늘 야구를 봤다. 거실에 놓인 텔레비전 채널의 선택권이 전적으로 아버지에게 있었기에 나는 아버지 옆에서 묵묵히 같이 야구를 봤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서서히 이 매력적인 스포츠에 빠져들면서 그 속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역전의 드라마에 깊이 심취했고, 심지어‘인생은 야구와 같다’는 나름의 철학적인 깨달음마저 얻어내며 ‘늦깎이 야구팬’이 되었다. 그리고 아빠와 나는 처음으로‘야구’라는 공통분모가 생겼다. 기다리던 경기가 있는 날이면 나는 치킨 한 마리를 주문하고 맥주도 몇 캔 준비해 아빠와 함께 홈팀을 응원하며 열광했다. 야구 덕분인지 아빠와 나는 그전 보다 훨씬 더 가까워진 기분마저 들었다.
그 후로도 나의 야구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꼭 보고 싶은 야구경기를 위해서라면 나는 과감히 약속도 미루었고, 하던 일도 서둘러 끝을 냈다. 그리고 퇴근길에 근처 시장에 들러 갓 튀겨낸 시장 통닭 한 마리를 샀다. 삼계탕에 들어갈 만한 크기의 어린 닭을 가마솥 기름에 두 번 튀겨내 담백하고 바삭바삭한 이 시장 통닭은 가격이 저렴한 한 것은 물론이고 혼자 먹기에 딱 좋았다. 나는 누런 봉투에 담긴 뜨끈뜨끈한 통닭을 한 손에 들고 편의점에 들러 차가운 맥주 몇 캔을 사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스누피가 그려진 편안한 원피스로 갈아입고 텔레비전을 켜고 적당히 볼륨을 높였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시장 통닭을 펼쳐놓고 맥주 한 캔을 땄다. 이제, 내가 응원하는 팀이 이겨주면 금상첨화이고 진다고 해도 다음을 기약하면 그만 이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위인 뼈 속까지 바삭하게 튀겨진 닭 날개를 한 입에 크게 뜯고 입 속에서 과자처럼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내며 씹이는 껍질의 고소함을 음미하며 차가운 맥주 한 모금을 넘겼다. 본격적으로 통닭을 부위별로 해체한 후 맛있게 먹어 치울 요량으로 양팔을 걷어붙이고 닭 가슴살을 힘껏 뜯는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최근에 옆 동네로 이사 온 지인이었다. 갑자기 치킨과 맥주가 당겨 근처 새로 생긴 치킨집에 있으니 얼른 나오라는 전화였다. 지금 절찬 치맥 중이니 나갈 수 없다는 나의 절규를 단박에 무시하고 근처로 이사까지 왔는데 나오지 않는다면 인연을 끊겠다는 협박에 가까운 으름장을 놓았다. 어쩔 수 없이 펼쳐놓은 통닭을 다시 봉투에 쓸어 담아 냉장고에 넣고, 오랜만에 연속 안타를 쏟아내며 무더기 점수를 올리고 있는,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아까운 경기를 뒤로 한 채, 지인이 기다리는 근처 치킨 집으로 향했다. 테이블 위의 널찍한 접시에는 맛있게 튀겨진 치킨 조각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지만, 나는 고스란히 두고 온 시장 통닭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려 좀처럼 손이 가지 않았다.
이 술자리는 야구경기가 벌써 끝나고도 남을 10시가 다되어 파했고, 나는 틈틈이 핸드폰으로 중계되는 경기를 힐끔거리며 마셔 댄 맥주 탓에 나는 술기운이 알딸딸하게 올랐다. 집으로 돌아와 차가운 생수를 꺼내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자 나에게 버림받고 차갑게 식어버린 시장 통닭과 눈이 마주쳤다. 갑작스러운 호출만 아니었다면 혼자서도 뚝딱 해치웠을 시장 통닭 - 내가 좋아하는 닭 날개라도 조금 더 맛있게 먹을 걸 그랬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