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고기 전골
마흔이 코 앞인데도 아직도 남자 친구가 생기지 않는 것으로 보아 슬슬 독거노인으로 살아갈 준비의 필요성을 느낀 그녀는, 그동안의 저축과 대출의 힘으로 저 멀리 귀퉁이에 한강이 보일락 말락 하는 작은 아파트에 자신만의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서너 달이 지나서 독거노인으로서 한참 선배인 나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나는 좋은 날 마시려고 아껴 두었던 레드 와인 한 병을 꺼내 목이 기다란 종이 백에 담고 근처 꽃집에서 노란 장미 한 다발을 샀다. 벨을 누르자 한껏 들뜬 그녀가 빼꼼히 열린 문 사이로 수줍게 얼굴을 내밀었다. 새색시처럼 커다란 꽃무늬가 있는 화사한 앞치마를 곱게 두른 그녀에게 장미를 덥석 안기고 그녀의 공간을 찬찬히 둘러봤다.
처음으로 꾸린 그녀의 공간… 그녀의 집을 향한 기쁨과 낭만 그리고 애착과 욕심 등이 그녀의 손길을 타고 주홍빛 소파로, 거실의 앤틱 한 스탠드로, 촘촘한 체크무늬 커튼으로, 원목의 동그란 테이블로 근사하게 변해 있었다. 그녀가 나를 위해 솜씨를 부려 차려놓은 식탁 위에는 불고기 전골이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끓고 있었다. 나는 작은 기포를 만들며 열심히 끓어오르는 불고기 전골을 보며 흑백사진 같은 어린 시절 일요일의 아침 풍경이 문뜩 떠올랐다.
엄마는 일요일 아침이면 불고기 전골을 했다. 보통 저녁 메뉴인 불고기 전골을 엄마는 아침에 했다. 그것도 일요일 아침에… 그 이유는 고기를 잘 안 먹는 우리에게 억지로라도 고기를 더 먹이기 위한 엄마의 전략이었다. 일요일 오후엔 우린 모두 각자 자유의 시간을 부여받았다. 친구를 만나서 놀아도 되고 텔레비전을 봐도 되고 만화책을 쌓아놓고 뒹굴어도 되고 낮잠을 자도 됐다. 우리에겐 일요일 오후는 그야말로 어떤 방해도 제약도 없는 완벽한 자유시간이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조건이 따랐다. 이 자유시간은 엄마가 차려준 아침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은 후에야 시작된다는 것. 즉 불고기 전골을 남김없이 비워야 한다는 거였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식탁 앞에 모여 앉은 우리는 네모난 전골냄비에 담긴 불고기를 정확히 4등분 했다. 그 누구에게 고기가 더 많은 것도 야채가 더 많은 것도 절대로 허용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팽팽한 긴장감 속에 공평하게 나눠진 각자의 몫을 해치워야 했다. 물컹하게 익은 고기가 유난히 더 싫었던 나는 빤히 내 몫을 내려 보다 벽시계를 봤다. 새롭게 단장을 한 어린이 대공원으로 친구들과 놀러 가기로 한 약속 시간이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에 맞춰 성큼성큼 다가왔다. 동생은 밥 위에 고기 덩어리를 얹고 조미 김을 싸서 부지런히 자신의 몫을 비우고 씩씩하게 물 한잔을 마시고 제일 먼저 사라졌다.
어느덧 언니도 오빠도 사라진 식탁에 나만 혼자 덩그러니 남아 도저히 넘어가지 않는 하얀 비계가 썩힌 마지막 고기 한 점을 젓가락으로 만지작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쉬엄쉬엄 빨래를 개는 엄마는 좀처럼 자리를 뜰 것 같지 않았고, 나는 어쩌면 친구들과 어린이 대공원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순간 들었다. 나는 남은 밥과 미운 고기 덩어리를 숟가락 담고 눈을 꼭 감고 입으로 넣었다. 나는 식탁에서 벌떡 일어나 집을 나오자마자 가방 속의 휴지를 꺼내 아무리 애를 써도 넘길 수 없는 고기 뭉치를 입안에서 뱉어 냈다. 그 순간, 엄마에 대한 미안한 마음보다 먹기 싫은 이 고기 뭉치를 내 입 밖으로 꺼낸 해방감이 더 컸다. 그 후로 난 매번 비슷한 수법으로 엄마의 불고기를 몰래 뱉어 냈고, 억지로라도 고기를 먹여 건강하게 키워내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을 난 또 그렇게 속여왔다.
후배가 만든 불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몇 번 씹자, 야들야들 부드러운 불고기가 순식간에 쑥 하고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한 번도 엄마의 불고기를 다 먹어주지 못한 것이 문뜩 미안해졌다. 엄마가 일요일마다 만들어 주었던 그때의 불고기는 어떤 맛이 었을까? 나에겐 그저 힘든 숙제 같았던 내 몫의 불고기 - 이렇게 궁금해질 줄 알았다면 조금 더 맛있게 먹을 걸 그랬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