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냉면
맑고 투명한 국물에서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않았다. 옅은 갈색을 띤 한 뭉치의 메밀 면은 그다지 탄력이 없어 보였다. 고명이라고는 한가운데를 차지한 삶은 계란과 절인 오이가 딸랑 이었다. 내 눈에 처음 비친 평양냉면이라는 존재는 그랬다.
서울에서 손꼽히는 유명 평양냉면집의 제일 큰방을 차지한 우리는 회장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최근 좋아진 실적과 쏟아지는 일감에 현업의 우리보다 더 흥분한 회장님께서 임원들 부터 소위 팀장이라고 불리는 조무래기들까지 모두 모아 점심을 쏘는 자리였다. 약속시간 보다 10분 늦게 도착한 회장님이 줄줄이 길게 이어놓은 테이블의 맨 상석에 착석함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냉면사발이 우리 앞에 놓여졌다. 팀장중에도 제일 막내인 나는 - 꼭 서열대로 자리를 정한 것은 아니지만 - 자연스럽게 테이블 모퉁이의 끝자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런 자리에서는 무조건 어르신들과 멀어질수록 나같은 어린이들은 맘이 편해지는 법이니까. 솔직히 내가 이렇게 빨리 팀장이 된 이유는 순전히 운이 좋아서 였다. 한편으로는 시대를 잘 만난 덕 인지도 몰랐다. 한참 여성 소비자가 시장의 중요 타깃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고‘여성인재개발’이라는 대의 명분으로 회사에서 여성팀장들을 키우는 게 트렌드였다. 그당시 내가 얼마나 가능성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자보다 남자의 비율이 월등이 높았던 우리회사에서 겁없이 뭐든 앞장서는 내가 어르신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을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속속들이 제대로 아는 게 없으니 무조건 닥치는 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앞섰다. 거침없었던 젊은 열정은 어느날 내 앞을 가로 막고 선 뜻밖의 기회를 만나 조금씩 꽃을 피우게 되었고, 회사는 아직도 부족한 나에게 팀장이라는 무거운 날개를 달아 주었다.
햇살이 쏟아지는 8월의 한가운데, 날씨는 찜통이었고 냉면은 이런 타이밍에 최고의 쿨 한 점심메뉴임은 틀림없었다. 나는 투명해서 맹물처럼 보이는 냉면 국물을 조금 떠서 맛을 봤다. 약간의 짠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이 심심한 국물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사이에 순식간에 맥주잔이 놓이고 총무팀 맴버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차가운 맥주를 반 컵 씩 채웠다. 고생이 많고 앞으로도 회사의 앞날은 여러분에게 달려있다는 입사후 백만번쯤 들은 회장님의 말씀이 끝나자 일제히 파이팅 이라고 외치며 건배를 했다. 그리고 모두 고개를 숙이고 냉면을 먹기 시작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이 묘령의 음식을 맛나게도 먹었다. 나는 식초와 겨자를 듬뿍 넣고 일반 냉면집에서 본적도 없었던 고추가루도 뿌리고 반찬으로 나온 무우절임도 넣고 휘휘 저어 한 젓가락 먹었다. 그러자 도대체 이게 무슨 맛인지 더 아리송해졌다. 나는 후루룩 소리가 스테레오 사운드로 울리는 주변을 힐끔 거리다 건너편 자리의 이사님과 눈이 마주쳤다. 이사님은 알듯 말듯 한 미소를 흘리며 “그래, 아직 이게 맛있을 나이는 아니지 …”하고 혼잣말처럼 내뱉고 냉면 한 젓가락을 또 맛있게 넘겼다.
급식 시간에 딴짓을 하다가 선생님에게 들킨 초등학생처럼 머쓱해진 나는 젓가락에 냉면을 두툼하게 말아 입 속에 넣고 알 수 없는 맛으로 범벅이 된 냉면국물을 한모금 들이켰다. 심심하고 씁쓸한 인생의 맛을 아는 어른들의 리그 평양냉면 – 어른답게 의젓하게 조금 더 맛있게 먹을 걸 그랬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