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내게서 젊은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 초조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때마다 옴니버스 영화 <쓰리, 몬스터>의 ‘만두’ 이야기가 떠오른다. 영원한 젊음을 꿈꾸는 여배우 ‘칭’의 섬뜩한 이야기이다.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칭은 자신보다 젊고 예쁜 여배우들에게 밀려나고, 남편마저 어린 여자를 만나면서 외로움과 불안함에 시달린다. 그러던 중, 칭은 먹으면 젊어진다는 만두 가게를 찾게 된다. 매일 만두를 먹으며 거짓말처럼 다시 젊음을 되찾은 칭은 어느 날 만두의 비밀을 알게 된다. 바로 낙태한 태아로 만든 것. 뱃속의 태아를 꺼내 먹으면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에 칭의 욕심은 멈출 줄 모르고, 비밀스럽게 미혼모의 태아들을 공급받는다. 그리고 태아의 속살과 뼈를 통째로 다져서 만두소를 만들고 만두를 빚는다. 창백한 그녀가 아름다운 자태로 식탁에 앉아 만두를 먹는 장면은 참으로 소름 끼쳤다. 무표정한 얼굴로 천천히 그녀가 만두를 씹을 때 나는 ‘오도독 오도독’ 소리는, 젊음을 향한 그녀의 절규이자 온전히 세상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죽음을 맞이한 태아의 울음소리 같았다.
칭은 왜 그토록 젊음을 지키고 싶었을까? 단순히 아름다운 외모와 주변의 관심을 갖고 싶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나이 든 칭에게는 더 이상 없는 것, 바로 젊은이들의 잠재된 가능성을 탐했던 것은 아닐까?‘만약에 말이야, 내가 너희들과 똑같은 젊음을 가지고 있다면 내 삶이 지금과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헛된 욕망을 품은 칭처럼, 나 또한 문득 내 옆을 지나가는 눈부신 젊음들이 한없이 부러워져서 넋을 잃고 쳐다볼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생각했다. ‘만약에 말이야. 내가 너희들처럼 젊다면…’ 하고.
그 옛날, 주말이면 한껏 멋을 내고 집을 나서는 스무 살의 내게 집안일을 도와주러 오신 할머니는 말했다. “젊으니까 얼마나 좋을까, 뭐든지 할 수 있잖아.” 그리고 부러움이 담긴 아련한 눈빛으로 나를 배웅했다. 그러나 젊은 그때의 나는 할머니의 말과 달리 뭐든지 할 수 없었다. 단지 뭐든지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가진 것뿐이었다. 그 가능성은 젊은 나를 흔들어 겁 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했지만 한없이 미약했고, 누구나에게 똑같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서 마냥 나를 혼돈스럽게 했다. 뚜렷한 목적도 없이 스스로를 다그치며 내가 꿈꾸는 내일을 위한 답을 찾아내라고 닦달했다. 그때의 가능성은 지금의 나를 만들기 위해 쓰였다. 그것이 무엇을 이뤄냈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 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까지 내가 존재하도록 나의 찬란한 과거가 되어준 것, 그것으로 제 몫을 다한 것이다.
젊음을 향한 ‘만약에 말이야’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더 이상 그런 종류의 벅찬 가능성을 등에 짊어지고 살아갈 필요도 없다. 앞으로의 내게‘어떻게 살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당당하게 다음의 미션을 주면 그만이다.
# tip
젊음과 경쟁하려 하지 않는다. 백전백패다. 나만 피곤하고 아프고 더 빨리 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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