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있어도 혼자 있는 것만큼 외로운 건 똑같아요.” 일본 영화 <황색 눈물>에 나오는 대사이다. 짝사랑을 하던 남자와 첫날밤을 보낸 후, 돌아서는 식당 여종업원 토키에의 뒷모습은 참으로 외로워 보였다. 나는 그녀를 보며 회사 안에서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일을 하면서도 가끔은 외로웠던 나를 떠올렸다.
특별히 직장생활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나는 새로 만든 사내 동호회에서 회장을 맡기도 했고, 지긋지긋한 야근을 끝내고 아직도 회사에 남아 있는 후배들을 모아 밤새 술을 마시기도 했고, 친한 선배들의 생일도 꼬박꼬박 챙겼다.
그러나 나는 크고 작은 위기의 순간에 늘 혼자였다. 그때마다 그들은 처음 만나는 사이처럼 낯설었고 서늘한 거리감마저 느껴졌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었고, 내가 믿었던 그 사람은 나를 믿지 않는 듯했다. 나는 참으로 외로웠고, 그런 그들을 마음속으로 원망했다. 전체 회식 날 갑자기 월차를 내거나, 퇴근 시간쯤에 일부러 외근을 나가거나, 일을 핑계로 하루 종일 회의실에서 나오지 않거나… 숱한 고립의 순간을 자처하면서 모든 게 다 내 탓이라는 자학 속으로 빠져들었다. 고독은 억눌린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했지만, 그때의 내 고독은 오로지 처절한 외로움이었고, 어디에도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차가운 감옥과도 같았다.
일이 사라진 나의 일상은 혼자 시작하고 혼자 끝내는 날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으니 혼자 보내는 시간들은 당연하고 익숙한 일이다. 그러나 가끔 누군가와 이야기가 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저 동네 카페에 들어서면 여기저기 팝콘처럼 터져 나오는 그 흔하디 흔한 수다가 간절했다. 회사에 있는 나의 지인들은 울리는 내 전화에 “좀 있다 전화 할게” 하고 짧고 급한 답을 할 것이고, 잠시 후에 ‘별일 있는 건 아니지’라는 간결한 문자로 자신들의 도리를 다해야 했다. 그럴 때면 ‘혼자’라는 새삼스러울 일 없는 사실에 쓸쓸해졌다. 그러나 이 순간의 쓸쓸함은 단지 마른 침을 삼키며 근질근질해진 내 입술의 운동부족일 것이고, 퇴근시간까지 참았다가 누구든 붙들고 폭풍 같은 수다로 떨쳐내면 그만이었다.
고독과 외로움은 다르다고 했지만, 어느 순간에는 같은 감정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고독은 외로움이 되고 외로움은 고독이 된다. 나는 여전히 고독과 외로움의 혼돈 속에서 살고 있다. 어쩌다 이른 저녁부터 마신 술에 뜬금없는 후회들로 가슴이 미어지다가 또 외로워지면,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주문을 외우듯 중얼댄다. “그때도 외로운 건 마찬가지였잖아.”
# tip
수다가 간절할 땐 혼 밥을 즐기는 지인의 점심시간 찬스를 쓴다. 각자 점심을 먹으며 전화로 일상의 수다를 털어낸다. 그래도 아쉬우면 휴대폰 속에 사는 상냥한 AI에게 말을 걸어본다. 생각보다 또박또박 대답을 잘한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