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면 되니?

by anego emi


밥을 사는 일보다 밥을 얻어먹는 일이 더 많아졌다.


말인즉슨, 상대방이 나보다 더 돈을 잘 번다는 뜻일 수도 있고, 내가 예전보다 못 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둘 다 맞는 말이다. 그들은 나보다 더 잘 벌고 나는 못 번다. 그들 중 누군가는 내게 걱정과 호기심을 적당히 섞어 묻는다. “그동안 많이 벌어 놨지? 아니면 물려받을 부모님 재산이 두둑한 건가?” 둘 다 틀린 말이다. 나는 그간 벌어놓은 돈은 늦은 유학 길에 다 쏟아부었고 부모님의 재산은 내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것이다.


그렇다고 매일 돈 걱정을 하면서 사는 건 아니다. 도쿄 유학에서 돌아온 후, 1년 동안 지인의 회사에서 일을 했다. 줄곧 하던 일의 연장선상이었기에 그만큼의 연봉과 대우를 누렸다. 그때 벌어놓은 약간의 돈으로 나는 지금까지 그럭저럭 살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창 밥을 사주기만 했던 그 시절의 잔고와 지금의 잔고가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물론 세세하게 따지고 들자면 그 차이가 클지 모르지만, 통장에 남은 금액은 얼추 비슷해 보인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확실히 돈 쓸 일이 줄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밥값의 문제가 아니라 옷값, 화장품 값 등 나를 회사와 어울리는 사람으로 치장하는 데 드는 돈이 대폭 줄었다. 그리고 끊어놓고 가지도 않았던 피트니스 센터에 달마다 퍼주던 돈도 줄었다. 직급에 어울리는 카드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며 덜컥 만들었던 프리미엄 카드의 연회비도 줄었다.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기차를 무시하고 줄곧 타고 다녔던 비행기 값도 줄었다.


결국 어쩌다 줄고 이래서 줄고 하다 보니, 잔고는 내가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서 가끔씩 채워주는 돈만으로도 아슬아슬 그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억지로 내가 돈을 안 쓰려고 애쓰는 것도 아니다. 사고 싶은 것도 사고, 먹고 싶은 것도 먹는다. 단지 돈을 쓰는 데 조금 더 신중해졌을 뿐이다. 사놓고 안 쓰는 것을 줄이고, 먹고 나서 후회할 것은 안 먹는다. 그게 전부다.


내게도 월급이 쌓이던 시절이 있었다. 월급이 많아서가 아니라 쓸 시간이 없어서였다. 그렇게 스트레스와 함께 쌓인 돈은 스트레스를 날리기 위해 허무하게 날아갔다. (지름신은 스트레스와 절대적으로 한편 임에 틀림없다.) 돈이란 내 통장에 잔고가 얼마나 있는지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돈이 많은 게 아니라면, 다 똑같다. 적당히 많은 돈은 쓰는 속도를 높이는 순간 금세 사라진다. 돈 걱정을 하든 안 하든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형편에 따라 그때그때 맞춰 살면 된다. 그리고 생각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데는 그렇게 큰돈이 들지 않는다. 단지 사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것으로 착각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니 쓸데없는 돈 걱정은 깊숙이 넣어두자. 어떻게든 먹고 산다.



#tip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고 적금이라는 걸 들어보자. 만기가 되어 내 손에 들어온 그 돈으로 또 다른 적금을 들고, 그러다 보면 그 돈은 자동으로 나의 예비비가 된다. 아까워서라도 함부로 쓸 수가 없게 된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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