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인 나의 휴가는 차가운 살얼음이 내려앉은 샤르도네다. 언제부터 언제까지라고 날짜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미치도록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시점이 되면, 나는 슬슬 휴가를 준비한다.
여전히 회사를 잘 다니는 절친한 후배들과 몇 번의 휴가를 같이 보내며 깨달은 게 있다. 더 이상 그들의 휴가의 이유와 목적이 나와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휴가가 끝나면 반드시 돌아가야 할 곳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지만, 나는 아니었다. 돌아가기 싫으면 며칠 더 뭉개도 그만이고, 딱히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될 급한 일도 없었다. 그러하니 그 시간에 대한 절박함이 달랐다. 그들이 더 놀고 싶고 더 누리고 싶은 그 아까운 시간에, 나는 그저 차가운 샤르도네를 마시며 책을 읽고, 한가로이 동네를 배회하고 싶어 하니까.
그 후로, 나는 프리랜서인 내가 무슨 휴가냐며 말끝을 흐리고 혼자서 보내는 휴가를 계획했다. 처음엔 어디든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호텔을 알아보고 항공권을 사는 일련의 과정들이 귀찮았고, 나의 우유부단한 성격은 어디로 갈지 결정도 못 하고 쓸데없이 여행 책들만 사 모았다. 그러다가, 어디를 가야 한다는 것조차도 스트레스가 되었고, 꼭 어디로 가야 할 이유는 무엇이냐고 스스로에게 다그치면서, 결국은 방구석 휴가를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말았다.
준비는 간단했다. 먼저 읽고 싶은 책을 고른다. 그것도 너무 읽고 싶었지만 왠지 대낮부터 읽기엔 조금 죄스러워지는 스릴 넘치는 추리 소설이나 마냥 웃게 되는 병맛 만화 시리즈. 그리고 나를 대신해 휴가를 다녀온 여행 에세이들. 그런 것들을 신중하게 고르고 또 고른다. 그다음엔 백화점 식품 매장으로 가서 안면을 터놓은 와인 마스터와 살갑게 인사를 하고, 적당한 가격의 추천 와인 몇 병을 산다. 물론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샤르도네다. (참고로 화이트 와인을 실수 없이 고르는 팁을 하나 알려주자면, 적당한 가격대를 결정하고 드라이 한 정도만 확인한 뒤에 무조건 샤르도네를 고르면 된다. 웬만해서는 실패할 확률이 별로 없다. 대부분 마실 만하다.) 그리고 간단히 곁들일 치즈와 크래커를 산다.
이렇게 모든 것이 준비된 그다음 날부터 나의 휴가는 시작된다. 보통 2박 3일 정도가 가장 적당한데, 그 이상 길어지면 휴가가 아니라 그저 빈둥거림이 된다. 느긋하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샤워를 하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날씨를 살핀다. 쨍쨍 해가 나면 창문의 커튼을 모두 걷어 재치고, 보슬보슬 비가 오면 향초를 밝힌다. 휴가지에나 어울릴 법한 하늘하늘 한 부드러운 면바지와 티셔츠를 꺼내 입고, 냉장고에 넣어둔 차가운 샤르도네를 꺼낸다. 가장 편안한 자세로 소파에 몸을 맡기고 책장을 넘기며 샤르도네를 홀짝인다. 물론, 음악도 빠질 수 없다.
그 순간,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이라고 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처럼 나의 언어는 샤르도네가 된다. 나는 내게 술잔을 내밀고, 나는 그걸 마시고, 책 속의 언어와 나의 언어는 하나가 되어서 나를 취하게 하고 행복하게 한다. 그렇게 프리랜서의 완벽한 휴가는 시작된다.
# tip
호캉스도 좋지만 때로는 집에서 혼자 보내는 휴가도 나쁘지 않다. 호텔비의 반의 반값으로 먹고 마시며 놀 수 있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