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사는 것이 지겨워서

by anego emi



마흔 살을 넘기고 특별한 이슈가 없는 싱글 여인들이 하는 이야기는 녹차 맛과 같다. 딱히 듣기에 거북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어머나’ 같은 감탄사를 연발한 만한 자극도 없다. 단순하게 그저 사는 이야기다. 별 뜻 없이 앞으로 살아갈 아주 평범한 수다들로 채워진다.


대기업에 다니던 잘 나가던 후배가 연남동에 뉴욕 스타일의 조그마한 펍을 냈다. 미루고 미루다 1년이 넘어서야 그곳을 방문한 나와 회사 동기인 두 여인은 한층 비장해진 후배의 얼굴에서 약간의 거리감을 느끼며 그 녀석의 근황과 계획을 묵묵히 경청했다. 누군가가 “안정된 직장에 조금 더 몸담지 그랬어”라는 아마도 후배가 십만 번쯤은 들었을 이야기를 꺼냈다. 그 녀석은 빙긋이 웃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법 단호하고 씩씩하게 답했다. “회사 생활은 그만큼이면 충분해. 나는 돈을 벌고 싶어. 무조건 많이 벌고 싶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녀석의 확고한 목표와 그것을 향한 액션 플랜들이 순간 대단해 보였다. 자신의 목표를 누군가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위해 열심히 살아갈 각오가 되었다는 뜻이다.


와인 몇 잔에 적당히 취기가 오른 우리는 오랜만에 다 함께 버스를 타고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초저녁의 버스는 그날따라 텅텅 비어 있었고, 적당한 잡음이 섞인 음악이 흘렀고, 맨 뒷자리에 나란히 앉은 우리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어쩌면 우리는 그 녀석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뜨끔했을지도 모른다. 사는 것이 점점 팍팍해지고 길어진 수명 탓에 그 녀석처럼 세컨드 플랜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직히 우리는 어떤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것도, 또 그것을 향해 다시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지겨웠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보다 그동안 해온 것을 다시 반복해야 하는 그 과정들이 싫었을 것이다. 나야말로 새로운 인생에 도전장을 던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동안 열심히 살았으니까 조금은 게을러도 내 멋대로 살아도 되지 않느냐고, 스스로에게 끝없이 투덜대고 있었다.


제일 마지막에 내려야 하는 나는 차례차례 버스에서 내리는 두 여인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나는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잘 알고 있어.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도, 서둘러 무언가를 더 할 필요도 없어’ 하는 위로와 응원이 담아 보냈다.



# tip

혼자 하기 힘들 때는 여럿이 모여서 같이 하면 된다. 일명 ‘세컨드 플랜 콜라보’. 내가 잘하는 일에 네가 잘하는 일을 더하고 더하다 보면 색다른 플랜이 완성될지도 모른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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