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 뜨거~ 한 여름의

고사리 삼겹살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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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우리도 여름에 휴가라는 걸 한번 가 보자! ”썰렁한 구내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다가 파티션 하나를 사이에 두고 늘 같이 야근을 하는 그녀가 불쑥 내뱉었다. 일종의 서비스 업에 종사하는 우리는 언제나 클라이언트가 여름휴가를 떠나며 남겨놓은 후덥지근한 숙제들을 그사이에 말끔히 해결해야 하는 운명이기에... 여름휴가임에도 불구하고 ‘여름에’ 휴가를 가 본 적이 없었다.


무슨 오기가 발동한 걸까? 그녀의 퇴근길 넋두리 같은 이 한마디에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고 급한 일만 대충 처리하고 다음 주에 반드시 여름휴가를 가겠다고, 사표를 가슴에 품은 듯 비장한 표정까지 지으며 본부장님에게 협박에 가까운 통보를 했다. 다행히 그동안 애간장을 녹이며 질질 끌던 일들이 속 시원하게 결론이 났고 나는 ‘푹 쉬고 오라’는 제법 훈훈한 말까지 덤으로 얻어내며 허락을 받았다. 드디어, 나는 입사이래 처음으로 한여름에 그것도 가장 핫한 제주도로 여름휴가를 떠나게 되었다.


제주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끈적하고 후끈한 공기가 환영의 포옹을 하듯 온몸을 뜨겁게 감싸며 8월의 찜통더위를 실감 나게 했다. 불볕더위 속에 땀을 비 오듯이 쏟아내며 주차장을 한참 가로질러 ‘전기로 움직인다’는 최신 모델의 렌트 카를 찾아냈다. 그리고 찜질방처럼 뜨거운 차 안의 열기를 에어컨 바람으로 대충 식히고,‘너무 더운 거 아니야?’라는 말을 연발하며 호텔로 향했다. 호텔방에서 잠시 동안의 휴식을 취한 후 다시 힘을 낸 그녀와 나는 호텔을 나와 가까운 해변으로 향했다. 주변을 가볍게 산책을 하고 해변이 내려다 보이는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라도 마실 생각이었다. 그러나 주차할 공간을 찾아 몇 바퀴를 돌고 돌아 간신히 주차를 하고 해변으로 돌아오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땀은 또 비 오듯 쏟아졌다. 오늘 개시한 그녀의 동그란 신상 라이방 선글라스가 땀과 함께 미끄러져 그녀의 코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렸고, 나의 하늘하늘한 회색 원피스는 땀으로 물들어 가슴과 겨드랑이에 집중적으로 검은 얼룩을 만들었고, 그녀와 나의 얼굴에는 어느새 웃음이 사라졌다. 이 찜통더위에 산책은 도저히 불가능했으며 해변의 전망 좋은 카페는 이미 사람들로 차고 넘쳤다. 어쩔 수 없이 핫도그를 파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아이스커피 한잔을 허겁지겁 비우고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다시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고 말았다. 나간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미 지치고 늘어진 우리의 컨디션은 바닥을 드러냈다.


멍하니 호텔방에서 넋을 놓고 침대 위에 큰 대자를 만들며 널브러져 있다가 갑자기 허기가 졌다.‘그래 무조건 몸보신될만한 걸 먹고 힘을 내자. 오랜만에 누리는 한여름 속의 기적 같은 여름휴가 아닌가?’ 그녀와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한 시간을 자동차로 달려 맛집으로 소문난 삼겹살 집에 도착했다. 이 더위 속에서도 숯불로 벌겋게 타오르는 불 판 앞에 모인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넘쳐났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생 삼겹살과 고사리가 한껏 달궈진 불 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었다. 가게 안에 놓인 커다란 냉장고 만한 두대의 에어컨이 엄청난 소음을 내며 풀가동되고 있었지만 불 판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우리의 땀은 식을 줄 몰랐다. 차가운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켜고, 싱싱한 여름 색의 상추에 위에 노릿하게 구워진 고기와 고사리를 얹고 쌈을 싸서 입안에 넣었지만, 솜뭉치 같은 고기와 질긴 고사리는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다. 결국에 뒤적뒤적 육즙 가득한 생고기를 베이컨처럼 바삭하게 태우고, 아까운 마음에 겨우 몇 점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무기력하게 식당을 나오고 말았다. 식당 앞에는 여전히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며 연신 부채질을 하는 배고픈 무리들로 북적거렸다.


다시 돌아온 호텔방에서 샤워를 마치고 차가운 생수 한 모금을 들이키며 텔레비전을 켰다. 최근에 한참 인기가 오르고 있는 예능프로그램에서 아까 그 집을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제주의 맛집’이라고 소개를 하며 먹성 좋은 친구들이 불 판 위의 삼겹살을 고사리로 돌돌 말아 입이 터져라 먹어 치웠다. 나도 모르게 화면 속 그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꿀꺽하고 군침을 삼켰다.‘아~배고프다. 왜 이제야 슬슬 식욕이 도는 거야?’ 이열치열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까짓 더위에 지지 말고 제주에서 가장 핫 한 고사리 삼겹살 - 저분들처럼 조금 더 맛있게 먹을 걸 그랬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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