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타코야끼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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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쿄의 겨울을 좋아했다. 스산하고 으슬으슬 축축한 한기가 온 몸속으로 파고드는 도쿄의 겨울… 나는 겨울이 오면 비니를 눌러쓰고 얇은 스웨터를 겹겹이 껴입고 덩치 큰 코트를 걸치고 밤거리를 뒤뚱뒤뚱 헤매고 다녔다.


12월이 되면 도쿄 타워는 오렌지색의 평상복을 벗어던지고 초록색과 빨간색으로 장식한 크리스마스 가운을 걸치고 밤하늘 속에서 별처럼 빛났다. 롯폰기 역에서 내려 사람들로 꽉 찬 교차로를 지나 미드타운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도심 속에 예고 없이 나타난 우주선처럼 거대한 도쿄 타워가 단박에 시선을 끌었다. 눈을 고정한 채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다가갈수록 도쿄 타워는 오묘하고 선명한 불빛으로 내 눈 속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차가운 겨울밤이면, 왠지 그 불빛은 매섭게 부는 바람 앞에 조금씩 흔들리며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낭만이 넘치는 파리의 에펠 탑과는 분명히 남다른 어떤 느낌과 분위기가 도쿄타워에는 스며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도쿄 타워가 두고 온 애틋한 연인처럼 자꾸 마음이 끌렸고, 기분이 울적한 겨울밤이면 그 주변을 서성이며 혼자만의 애절한 청승을 떨기도 했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몸도 마음도 홀가분한 금요일 늦은 오후, 나는 롯폰기로 향했다. 작은 산타 마을로 단장을 한 미드 타운 쇼핑몰에서 한국의 지인에게 보낼 크리스마스 카드를 몇 장 사고, 겨울 시즌 한정으로 나온 짙은 초콜릿 향이 나는 커피를 마시며, 늘 그랬듯이 도쿄 타워를 향해 설레는 발걸음을 옮겠다. 도쿄 타워는 언제나 변함없이 내 방황의 이유를 묻지도 탓하지도 않았다. 그저 ‘이런 밤이면 어쩔 수 없잖아’하고 나에게 다정하게 속삭이며 키다리 아저씨 같은 미소를 짓고 내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잠깐 걸음을 멈추고 넋 나간 듯이 빤히 도쿄 타워를 봤다. 나는 도쿄 타워가 강렬하게 뿜어내는 찬란한 불빛 속으로 막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허전한 기운이 내 뱃속에서부터 목구멍까지 빠른 속도로 차 올랐다. 순간 강렬하게 허기가 졌다. 이 허기는 아마도 쓸쓸함과 외로움의 다른 이름 일지도 몰랐다.


무언가를 먹기 위해, 아니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상’처럼 무작정 헤매다가 나는 모퉁이의 타코야끼 가게 앞에서 멈춰 섰다. 나는 명란 소스와 파가 듬뿍 올려진 타코야끼 여섯 알과 하이볼 한잔을 주문하고, 차가운 날씨 탓에 텅 빈 가게 앞의 테이블에 앉았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을 내 테이블로 가져다주며 알바 생으로 보이는 청년은 친절하게도 우산 모양의 난로를 켜주었다. 나는 왕 사탕 만한 타코야끼 한 알을 조심스레 깨물고 차가운 하이볼 한 모금을 넘겼다. 그리고 내 앞에 서 있는 도쿄 타워를 처연하게 바라보며 ‘맛있네’하고 속삭이듯 내뱉었다. 그런 나를 지나가던 누군가가 물끄러미 봤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빙긋 웃었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단정한 검정 코트를 입은 귀여운 인상의 외국 남자는 나와 같이 타코야끼와 하이볼을 주문하고 옆 테이블에 앉았다. 머쓱해진 나는 타코야끼 한 알을 생각 없이 통 채 입 속으로 밀어 넣고, 터져 나온 뜨겁고 진득한 속살에 화들짝 놀라며 허둥지둥 하이볼 한 모금을 마셨다. 그런 나를 그는 장난기 넘치는 옆집 꼬마를 보는 것처럼 물끄러미 보다가 슬쩍 웃었다. 나도 모르게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추기 위해 잔을 들자 그는 나를 향해 자신의 잔을 들며 건배를 했다. 나는 가벼운 목례를 하고 하이볼을 홀짝이며 곁눈질로 그를 훔쳐봤다. 그는 단순한 여행객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틈틈이 손목시계를 보던 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한 후,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러다 어설픈 일본어 발음으로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인사를 하고 나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그리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곳에서 타코야끼와 하이볼을 나와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하고 한쪽 눈을 찡긋하며 돌아섰다.


나는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도쿄 타워의 불빛처럼 짙은 오렌지색으로 달아오르는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때 내 앞의 도쿄 타워는 나에게 변함없이 또 속삭였다.‘이런 밤이면 어쩔 수 없잖아’ 겨울밤의 짧은 두근거림을 안겨준 동글동글 타코야끼 – 알듯 말 듯 묘한 썸을 타며 조금 더 맛있게 먹을 걸 그랬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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