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상, 드디어 팔렸어요. 당신 작품!” 작은 갤러리의 오너인 P의 문자였다. 학교를 마치고 지하철역으로 가던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P에게 전화를 걸었다.
2만 엔. 내 그림 값이었다. 갤러리 수수료를 빼면 1만 4천 엔이 내 몫이 된다. 입학식 날, 한 선생님은 말했다. 너희들의 작품이 팔리는 그때부터, 너희들은 작가가 되는 거라고. 나는 드디어, 작가가 되었다.
내 나이의 반 토막인 일본의 청춘들과 나는 공통점이 별로 없었다. 쉬는 시간마다 그들이 쏟아내는 수다에 나는 동참할 수 없었고, 틈만 나면 그들이 모여서 하는 각종 게임기들의 요상한 소음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철없는 그들도 그림 앞에서는 숙연해졌다. 학교에는 반드시 천재들이 있고, 그들의 재능 앞에 고만고만한 나머지들은 다 한편이 된다. 나도 그들과 한편이었다. 여름 방학을 앞둔 어느 날, 마지막 과제를 끝내고 누군가가 갤러리를 빌려 전시를 해보자고 했다. 나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누가 우리 같은 아마추어의 그림을 보러 올까?’ 그러나 (이들 눈에는) 언제나 ‘마음 푸근한 한국에서 온 큰언니’인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자고 했다.
영화 <상실의 시대>에도 나온 적이 있다는 긴자의 갤러리 골목, 그 끝자락에 있는 낡은 지하 갤러리를 일주일간 빌려 각자 한 작품씩 전시하기로 했다. 그리고 참가자들이 순번을 정해서 갤러리 오너인 P와 함께 갤러리를 지키기로 했다. 내가 당번이었던 날, 운 좋게 미술 잡지사에 다니는 기자가 갤러리에 들렀다. P의 소개에 의하면, 이 분은 아마추어들의 작품을 사 모으는 게 취미이고 괜찮은 작품은 슬쩍 잡지에 소개도 해준다고 했다. 만난 지 몇 시간 만에 나의 신상을 모두 파악한 P는 (50대 초반이었는데, 욘사마의 엄청난 팬이었다) 매우 적극적으로 내 작품을 기자에게 소개했다. 기자는 몇 분 동안 별말 없이 빤히 그림을 쳐다보더니 아리송한 미소를 짓고 갤러리를 나섰다. P는 내 두 손을 덥석 잡으며 그의 반응이 나쁘지 않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약속했던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P는 원한다면 내 작품을 계속 전시해도 좋다고 했다.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다시 갤러리에 들린 기자가 내 작품을 사고 싶다고 했고, P는 냉큼 2만 엔이라는 거금을 그림 값으로 불렀다. 그는 흔쾌히 그 금액을 지불했고, 나의 다른 작품도 기회가 된다면 더 보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나보다 더 신이 난 P는, 숨도 안 쉬고 기자가 한 말들을 전해줬고, 나는 가슴 뭉클해져서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 후로, 그들은 내 작품을 위한 숨은 조력자이며 응원군이 되어주었다.
사진으로 남겨놓은 그때의 그림들을 지금 다시 보면 작품이라고 하기엔 턱없이 어설프고 그저 그랬다. 그들이 기꺼이 내 그림들을 보듬어준 이유는, 늦깎이 작가 지망생을 응원하고 싶은 고마운 마음이었을 것이다. 작가는 아무나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그 힘들고 어려운 길을 굳이 걷겠다고, 나는 결심했고 또 결심한다.
# tip
작가는 아무나 될 순 없지만 누구나 될 수 있다. 그리고 싶은 것이 있고, 쓰고 싶은 것이 있고, 만들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끈질기게 이어갈 용기가 있다면 가능하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