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에 가까운 일

by anego emi



나는 대리로 승진하자마자 강북 끝자락의 아파트에서 벗어나, 회사와 가까운 강남으로 이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허영이라는 겉멋을 살짝 걸친 세상 물정 모르는 스물일곱 살의 커리어우먼은 고작 몇십만 원 오른 월급을 고스란히 월세로 상납하겠노라 다짐하며, 달뜬 마음으로 집을 보러 다녔다. 나의 조건은 심플했다. 강남일 것. 고층일 것. 24시간 나의 안전을 지켜줄 경비원이 있을 것.


턱없이 비싼 월세와 관리비에 당황스러운 마음을 달래며 몇 날을 돌아다닌 끝에, 나는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강남의 낡은 오피스텔에 짐을 풀었다. 힘겨웠던 하루의 종지부를 찍고, 반쯤 얼빠진 얼굴로 근처 편의점에서 사 온 차가운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오늘도 지겹게 봐왔던 광고들로 번쩍이는 창 밖을 내려다봤다. 그 순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보자는 헛된 다짐을 했는지도 모른다.


대로변을 끼고 있는 이 오피스텔은 잠시라도 창문을 열어놓으면 희뿌연 매연이 뒤섞인 퀴퀴한 공기는 물론, 맨발이 새까매지도록 먼지가 바람을 타고 들어왔다. 뿐만 아니라 신경을 후벼 파는 거리의 소음들은 텔레비전의 볼륨을 두 배로 올리게 했다. 도심을 내려다볼 욕심으로 커튼도 없이 방치했던 널찍한 창문은, 주말의 늦잠을 방해하는 칼날 같은 햇살을 차단하기 위해, 한 달 만에 두꺼운 장막으로 가려졌다. 그 후로 오랫동안, 눈부신 아침의 태양에게 서서히 길을 열어주는 새벽하늘을 볼 기회는 나의 일상에서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며칠 전 새벽 무렵, 문득 누군가가 나를 살며시 흔들어 깨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살포시 눈을 떴다. 위에서 아래로 반쯤 내려진 커튼 사이로 자주 빛을 적당히 품은 짙은 바다 빛 하늘이... 힘없는 내 동공 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나는 몸을 일으켜 창문을 활짝 열고 커튼을 힘껏 걷어 올렸다. 새벽바람에 흔들리는 창 밖의 편백 나무에서 새소리가 났다. 녹음이 우거진 푸르른 나뭇가지 속에 몸을 숨긴 새들이 경쟁하듯 신나게 울다가 푸드덕 소리를 내며 하늘 위의 검은 점이 되었다가 금세 사라졌다.


새벽하늘은 이런 거였다. 새벽에 잠을 깬 날들은 수없이 많았지만, 이렇게 하늘을 올려다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동안 나의 새벽은 피곤에 절은 내 몸은 물론이고, 머릿속으로 끝없는 고민과 걱정을 곱씹으며 그저 아침이 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누군가가 그랬다. 새벽에 드는 생각이 긍정적이거나 행복하기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그렇다면, 지금 내게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분을 행복이라고 말하기는 어쩐지 쑥스럽지만, 활짝 열린 창문으로 불어오는 새벽의 찬바람에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눈부신 아침을 고대하고 있었다.


# tip

새벽에 눈을 뜨면 산책을 나선다. 출근 없는 아침의 여유를 새벽부터 즐긴다는 마음으로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고,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는 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실감해본다. 그 순간을 사진 한 장으로 남겨도 좋고, 육성으로 짧은 감상을 내뱉어보는 것도 근사하겠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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