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게도 그때가 되면 그들이 왔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도쿄의 학교생활이 내 자리가 아닌 듯 낯설어지고 매일 보는 하늘에 뜬금없이 눈물이 차오르면,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이 왔다. 나와의 길고 짧은 인연의 끈을 꽉 쥔 사람들. 그들은 별 이유 없이 도쿄로 날아와 나의 텅 빈 냉장고와 부족한 물감들을 채워줬고, 우리는 예전처럼 맛있는 걸 먹으며 밤늦도록 수다를 떨었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그간 열심히 발품 팔아 찾아낸 맛집과 볼만한 곳들을 부지런히 소개했고, 마지막 날이면 반드시 요코하마에 데리고 갔다.
‘나의’ 요코하마. 그렇게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 이곳은 쓸쓸했던 나를 단번에 행복하게 하는 남다른 곳이다. 이곳에서는 좁고 답답한 도쿄와 달리 탁 트인 바다를 보며 한가로이 공원을 산책할 수 있었고, 싸고 맛있는 음식과 이색적이고 다양한 물건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벤치 의자에 앉아 요코하마 맥주 한 캔을 마시며 바라보는 해질 무렵의 하늘과 바다가 너무 근사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면 노을은 바다를 선명하게 자신의 색으로 아름답게 물들이며 반짝였다. 그 수면 위로 하얀 갈매기들이 날았고, 어디선가 어린아이들의 귀가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나는 종소리에 맞춰 맥주 한 모금을 삼키며, 지그시 실눈을 뜨고 이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에 취하곤 했다.
이런 나의 요코하마를 그들에게 어찌 보여주지 않을 수 있을까? 먼저 요코하마의 차이나타운으로 가서 장인이 만든 명물 만두를 먹고, 달달한 알밤 한 봉지를 사 들고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마지막으로 손금을 봐주는 가게가 줄줄이 늘어선 손금 거리에 들리는 게 일종의 코스였다. 나는 지인들에게 재미 삼아 손금을 보게 했다. 가격도 1천 엔이니까 부담 없고, 일본인의 손금에 대한 신뢰는 대단했기에 한 번쯤 경험해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가 될 터였다.
한 번은 제 법 눈매가 날카로운 중국 할머니가 하는 가게를 간 적 있는데, 때마침 이직 때문에 고민하던 후배 K의 상황을 귀신같이 맞췄다. 내가 중간에서 통역을 해줬을 때, K는 화들짝 놀라며 그런 것도 손금에 나오느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손금은 수시로 변하는데 지금 당신의 상황이 그러하니까”라고 무심하게 말했다. 다들 할머니의 손금 풀이에 대만족이었다.
계산을 끝내고 막 일어서려는 순간, 할머니가 내 손목을 잡았다. “통역하느라 고생했으니 네 손금은 그냥 봐줄게.” 나는 그전에 손금을 몇 번 본 적이 있어 괜찮다고 거절했지만, 할머니의 매서운 눈빛 앞에 주저앉고 말았다. 할머니는 내 양손바닥을 번갈아 가며 빤히 보다가 말했다. “당신은 말이야… 재주가 많은 게 탈이네. 하지만 그 덕에 돈 걱정은 안 하겠어. 큰 산을 하나 넘고 왔으니, 이제 더 힘든 일이야 있을까? 지금부터 속 편하게 살아.” 나는 꽁꽁 숨겨왔던 비밀 하나를 세상에 들킨 것처럼 가슴이 뜨끔했다.
우리는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 맥주를 마시며 지는 노을 봤다. 그러다 문득 각자 손을 펼쳐 그 손 위에 그어진 몇 개의 선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말없이 싱긋 웃었다. 나는 다시 보랏빛으로 물들어가는 투명한 하늘에 시선을 고정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게 뭐라고. 이 선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비밀이 있구나. 도대체 알 수 없는 인생처럼 말이야.”
#tip
사주팔자와 달리 손금은 마음먹기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고 했다. 약해질 때마다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자. 그리고 주문을 걸자. ‘손금아. 도와 다오. 내 편이 되어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