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부터 비가 왔다. 한 뼘쯤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새근새근 아이의 고른 숨소리 같은 빗소리가 들렸고, 차분하게 스며드는 바람은 포근했다. 나른한 잠 속으로 빠져들 무렵, 또렷한 메신저 알림 소리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이 시간에 누구지?’
메신저의 주인공은 기획 팀에서 근무했던 후배 Y였다. Y와 나는 함께 일한 적은 없지만, 회사에서 보내준 일주일간의 해외 연수를 같이 갔었고 저녁마다 호텔 1층의 바에서 와인을 홀짝이며 수다를 떨었다. 그 후로 회사에서 우연히 Y를 마주칠 때면 언제나 Y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 차 보였고, 어쩌다 퇴근 후에 맥주라도 한잔하게 되면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털어놓는 고해성사 같은 Y의 이야기들은, 무거웠다. Y는 내가 퇴직하고 몇 달 후 새로 생긴 회사로 이직했고, 제법 잘 나간다는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얼핏 들었다.
‘언니, 어떻게 지내세요? 가끔은 언니가 너무 보고 싶어요. 사는 건 참 그래요.’ 한밤의 유령처럼 보내진 Y의 메시지는 짤막한 안부 인사에 불과했지만, 어딘가 그 옛날처럼 무거웠다. 흐릿해진 내 기억의 저편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Y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나를 향해 간절한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인생은 일상”이라는 카프카의 말처럼, 날마다 반복되는 Y의 일상은 오늘 또 어떻게 흘렀고 지금까지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어쩌다 이렇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까만 밤에 잠들지 못하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몇 번 스치고 지나갔을 인연 중에 하나였던 나를 찾아내고, 이런 메시지를 보내게 된 것일까?
지금 이 순간 Y의 신호에 답하는 것이 어쩌면 Y를 더 깊은 수심으로 빠지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지라도 Y가 긴 숨을 토해내며 수면 밖으로 스스로 떠올라야 했다. 견디고 이겨내야 할 이유를, 그것이 비록 구차한 변명에 불과할지라도 스스로 찾아내야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더 많고, 아무리 애를 써도 타고난 그 누군가를 앞지를 수 없는, 어떻게 해도 공평해지지 않는 이 세상을 향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와 반전은 어떤 식으로든 행복하게 살아주는 것, 그뿐이다.
회사를 떠나고 보니 그 비결은 간단했다. 앞날이든 뒷날이든 너무 걱정하지 말고, 굳이 주변의 모두를 자기편으로 만들 필요도 없으며, 나를 이해시키려는 수고를 일상에서 과감히 덜어내면 된다. 그리고‘기대’라는 녀석을 애초부터 마음에 품지 않아야 한다. 기대 또한 실망의 다른 이름이 되고 말 것이니까.
소설 《인생》의 서문에서 위화 작가는 말했다. 인생은 자신의 운명과 우정을 쌓는 것이라고. 그러하니 어떤 식으로든 살아가야 한다고. 단지 살아가는 게 전부라고. 그것이 인생이라고. 나는 거기에 하나를 더하고 싶다. 어떤 식으로든, 누가 뭐라고 하든,‘행복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tip
자신만의 소확행을 찾아서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실행할 것. 일 때문에 혹은 다른 이유 때문에 절대 미루지 않는다. 일만 잘하는 사람이 아닌 내게도 잘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한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