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 통에 담긴 마법

중국식 볶음밥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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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나는 공짜로 되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말하자면 스스로가 인정할 수 있는 나름의 뼈아픈 노력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무언가가 손에 쥐어졌다. 잘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모두의 거친 반대 속에 떠난 미국 유학만 해도 그랬다.


모아둔 돈은 별로 없었지만 그간 살던 집의 전세금을 손에 쥐고 환전을 하러 은행에 가던 날, 지금은 가물가물 한 뉴스가 된 ‘IMF의 여파’로 달러는 두배를 넘어 세배까지 오르기 직전이었다. 절반은 앞으로 송금해 줄 엄마의 통장에 넣고 절반은 달러로 바꿨다. 두둑했던 세종대왕님이 그려진 지폐가 달러로 변신하는 순간 정확히 삼분의 일로 줄었다.‘그래… 경기가 좋아지겠지. 당분간만 아껴 쓰고 버티면 금세 회복될 거야.’그렇게 생각하며 미국행 비행기 속에서 나를 다독이며 안심시켰다. 그러나 회복은커녕 상황은 더 악화되었고 소위‘있는 집’ 애들도 금전에 쪼들리며 유학생활을 힘들어했다.


어학연수를 서둘러 끝내고 필라델피아의 단과대학으로 편입한 나는 갑자기 두배로 오른 학비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었다. 떠나기 전 부모님과 약속한 금액 이상 손을 벌리기에는... 나에게도 양심이라는 게 있었고 어떻게 하든 장학금을 타거나 생활비라도 벌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국 유학생들의 도움으로 나는 일주일에 삼일, 첫 수업이 시작되기 전인 오전 5시부터 8시까지 도넛과 커피를 파는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세 시간이니까 수업에는 별 지장이 없을 것 같았고 차즘 익숙해지면 조금씩 시간을 늘려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안일한 생각은 아르바이트 첫날부터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가게 문을 열자마자 손님들은 쏟아졌고 길게 늘어 선 줄은 좀처럼 줄어들 줄 몰랐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인생을 책상 앞에서만 살아온 탓인지 민첩하게 몸을 움직이며 주문대로 척척 뭐든 만들어 내는 익숙한 그들의 스피드를 나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게다가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흑인들의 영어에 정신은 하나도 없었고, 처음으로 다뤄 본 뜨거운 커피 주전자는 두려웠고, 다양한 종류의 도넛의 이름은 외워도 외워도 헷갈렸다. 결국 도움이 되긴커녕 실수만 연발하고 함께 일하는 맘 좋은 교포들의 배려 속에서도 나의 일하는 본새는 당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첫 주를 위태롭게 버티고 받은 주급을 가방 속에 고이 넣고 학교로 갔다.


그날따라 프린터 물도 없이 구두로만 진행된 경제학 수업 시간 내내 교수님의 영어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고, 간신히 다음 수업시간까지 제출해야 하는 과제가 무엇인지 옆자리 친구에게 물어 메모를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몸은 천근만근이고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이 없었다. 다음 수업까지 두 시간의 여유가 있었기에 나는 카페테리아의 소파에 두 다리를 쭉 뻗고 누워 잠시 동안 잠이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오후 수업의 쪽지 시험이 생각났다. 미리 예습을 해두지 않으면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다. 급히 가방을 열어 심리학 책을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어쩐지 가방이 아침보다 헐거웠다. 아뿔싸… 경제학 강의실의 의자 밑 선반에 책을 놓고 다시 챙겨 넣는 걸 까맣게 잊어버린 거였다. 서둘러 허둥지둥 강의실로 갔지만 책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 순간 어깨의 힘이 쭉 빠지며 하늘이 노래졌다. 몇 푼 벌지도 못하는 아르바이트 덕분에 오전 수업을 망치고, 백 달러가 넘는 비싼 책도 잃어버리고, 시험 준비까지 할 수 없게 된 거였다. 나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 오늘 받은 주급과 가진 돈을 몽땅 털어 학교 서점으로 가 책을 샀다. 그리고 가까스로 쪽지 시험에서 빵점을 면하고 학교 셔틀버스를 타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로비에 놓인 소파에 앉아 아침에 마시다 남은 김 빠진 소다 한 모금을 힘없이 삼켰다. 그런 나를 중국 유학생 료가 발견하고 인사를 했다. 오늘도 트레이드 마크인 노란 운동복을 걸친 그는 나에게 불쑥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생각 없다며 거절하는 내 손을 억지로 끌고 기숙사 앞 중국식 푸드 트럭으로 가 새우 볶음밥 두 개를 주문했다. 잠시 후에 금방 볶은 고슬고슬한 볶음밥이 담긴 빨간 사각 통을 나에게 내밀며 말했다. “먹어. 왜 너희 나라 말에 밥심으로 버틴다는 말이 있지?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너 쓰러지기 일보 직전 이야.”그리고 내 옆에 앉아 무표정하게 볶음밥을 먹었다. 그러고 보니 하루 종일 소다 몇 모금 말곤 먹은 게 없었고 아침부터 지금까지 배고프다는 생각이 날 틈이 없이 넋이 나가 있었다. 국비장학생으로 유학을 와 학비 걱정 없는 저 중국 친구는 도대체‘밥심’을 어떻게 알았을까?


나는 아무 말 없이 볶음밥을 먹었다. 그러자 차츰 정신이 또렷해지면서 왠지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중국 친구 료가 건네 사각 통에 담긴 마법의 볶음밥 - 공짜가 없는 내 인생에 닥치는 뜻밖의 시련에도 지치지 않도록 조금 더 맛있게 먹을 걸 그랬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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