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가 깨다가’하는 걸 반복하며 침대 위에서 뒤척이던 주말 오후… 깊은 잠에 빠지지 못한 탓인지 몸은 찌뿌둥하고 어깨와 허리는 욱신욱신 쑤셨다. 몸이란 참 고약하다. 푹 쉬라고 이렇게 방치를 해도 시간이 지나면 꼼짝하지 않은 것에 대해 벌을 준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2시였다. 나는 짐덩이 같은 몸을 일으키고 습관처럼 냉장고 문을 열었다.
하얀 현광 등 불빛이 새어 나오는 썰렁한 냉장고의 한가운데 노란색의 작은 냄비가 놓여있었다. 집에서 요리라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는 게 전부인 나에게 알 수 없는 이 냄비는 어디서 온 걸까? 냄비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만둣국이었다. 분명 누가 왔단 간 거였다. 사는 게 점점 피폐해지는 이 가여운 여인을 위해 하늘에 계신 그분이 우렁각시라도 파견한 걸까? 냄비 뚜껑 위에 반으로 접힌 포스트잇이 보였다.‘언니… 올해도 엄마가 만두를 빚었어. 만둣국 끓였으니까 데워서 꼭 다 먹어.’ 맞다. 언제나 김장철이 다가오면 한해를 묵힌 배추김치와 두부, 숙주, 간 고기를 넣고 동그란 왕만두를 빚어 딸의 지인들에게 나눠주시는 고마운 분. 후배 어머니의 솜씨였다.
나는 벌써 5년째 이 고마운 음식을 꼬박꼬박 선물 받고 있었다. 집 비밀번호를 아는 그녀가 일에 허덕이며 새벽이나 되어야 귀가하는 나를 위해 어젯밤 우렁각시처럼 냉장고에 몰래 놓고 간 게 틀림없었다. 순간 식욕이라고 손톱만큼도 없는 나에게 만둣국은 애절한 사인을 보냈다.‘얼른 데워서 먹어. 이건 그냥 만둣국이 아니야.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가 너에게 보내는 소중한 마음이야.’이렇게 다시 뚜껑을 닫음과 동시에 내 머릿속에서 감쪽같이 잊히고 만다는 걸 아는 만둣국은 아는 듯했다. 나는 만둣국을 데우고 찬장 위에 올려놓은 큼직한 사기그릇을 꺼내 허연 김이 올라오는 만둣국을 담았다. 나는 오랜만에 집밥을 먹는 것 같아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포동포동 예쁘게 살이 찐 왕만두를 반으로 잘라 국물과 함께 떠먹자 매콤하고 시큼한 김치가 아삭아삭 씹히면서 입맛이 돌았다. 역시, 어머님의 만둣국은 단연 최고였다. 그녀의 쪽지대로 맛있게 다 먹어 치우고 그녀와 어머님에게 잊지 않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졌다. 그 순간 침대 머리맡에 던져둔 핸드폰이 일요일 오후의 정적을 깨며 요란하게 울렸다. 주말에 울리는 핸드폰은 그것도 오후에 울리는 핸드폰은 왠지 피하고 싶어 졌다. 갚아야 할 돈이 있는 빚쟁이의 독촉 전화 같다고 할까? 숨 넘어갈 듯 울리는 벨 소리는 한번 큰 숨을 내쉬 듯 잠시 멈췄다가 다시 울렸다. 나는 꼭 쥐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본부장님의 전화였다. 어제 새벽까지 작업해 보낸 일들이 무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난리가 난 듯했다. 마침 우연이 회사에 들린 이사님이 그것을 가장 먼저 파악하고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나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급하게 다시 노트북을 열고 파일을 백업하고 팀원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옷을 챙겨 입고 현관을 나서다가 나는 갑자기 멈춰 섰다. 누군가 내 등을 애처롭게 붙잡는 기분이 들었다. 고개들 돌리자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만둣국에 내 시선이 멈췄다. 나는 신발을 벗어던지고 식탁으로 가 만두 한 알을 통째로 입이 터져라 넣고 국물을 그릇 채 들어 단숨에 마시고 돌아섰다.
그 후로 나는 어머님의 만둣국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갑작스럽게 재발한 암으로 그다음 해 가을, 하늘나라로 가시고 말았다. 찬바람이 불면 변함없이 그리워지는 아득한 기억 속에 남겨진 어머님의 만둣국 – 내 식탁 위에서 차갑게 식어 가기 전에 조금 더 맛있게 먹을 걸 그랬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