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

by anego emi

한창 바쁘던 그 시절에 저는 결심을 하곤 했죠.

지금보다 10년 후쯤에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인생을 살겠다고.

아마도 그때쯤이면 직장 생활도 할 만큼 해서

스스로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위치가 되었을 것이고

혹은 어찌어찌하여 회사를 떠나

살기로 했다면 내 마음먹기에

달렸을 것이라 생각했답니다.


10년이 지났습니다.

아니 10년하고도 또 10년이 더 지났습니다.

안타깝게도... 전 여전히 여행을 떠나지 못하고 있죠.

눈코 뜰 새 없이 너무 바빠서요?

아니면 요리조리 여유가 없어서요?

아닙니다. 그냥 게을러서입니다.

맛있는 것도 먹어본 사람이 잘 아는 것처럼

여행도 자주 떠나본 사람이 잘 떠나는 법이라는걸...

지금에야 깨달았답니다.


프리랜서인 저는 시간이 고무줄인데요

매번 가을이 올 때마다

설렁설렁 일을 하며 생각하곤 해요

올가을엔 꼭 어디론가 훌쩍 떠나서

눈부신 가을 하늘도 실컷 보고

아름다운 일몰 앞에 눈물 한 방울도

뚝 하고 흘려보고

제철의 맛있는 음식도 빠짐없이 챙겨 먹으며

가을을 제대로 느껴보겠다고.


그렇게 매일매일 결심만 하다가

일주일이 가고 한 달이 가고

어느새 찬바람이 부는 겨울을

맥없이 맞이하고 만답니다.

이런 순간마다, 나를 끊임없이 졸라대며

여행을 떠나자고 떼를 써주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하죠.

(그 누군가가 꼭 남자친구 일 필요는 없고요

그저 저와 처지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이면 더할 나위 없겠죠.)


올가을도 어쩌면 날마다 노랗게 물들여 가는

파란 하늘을 아쉬워하기만 하면서

아무 데도 못 가고 말겠지요.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지만요)


두 눈을 지그시 감으니

언제가 읽은 에세이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어

하루하루를 느끼며 살고 싶다던...


그런데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바지런함의 문제라는 것을요.


내가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여행을 싫어해서도

시간이 없어서도 아니고

단지 게으르기 때문이란걸요.



그래도 또 매번 결심을 합니다

어떻게든 떠나고 싶다고.

주먹을 꼭 쥐고, 입술을 꽉 다물어 봅니다.


남은 생 잘 먹겠습니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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