훨훨 날아라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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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훨 날아라... 우리 딸 ~'

대학을 졸업하고 첫 출근을 하는 날

엄마가 저에게 건넨 말입니다.


부산이 본가였던 저는

처음으로 학교 앞 자취방이 아닌

13평짜리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

독립을 하게 되었죠.

전세금은 부모님이 저의 결혼 자금으로

모아두었던 돈을 일단 염치없지만

당겨 쓰는 걸로 충당을 했고,

가구며 가전제품은

태어나 처음으로 제 이름으로 발급받는

카드로 몽땅 사들였죠.


이사를 하던 날,

혼자서도 문제없다는 저의 손사래를 뒤로하고

엄마는 새벽 첫 기차를 타고 올라와

좁다란 방을 쓸고 닦기에 여념이 없었죠.

몇 가지 안 되는 짐들이 들어오고

세탁기며 냉장고며 TV가 놓이고

엄마와 저는 늦은 점심을 먹었죠.


엄마는 제 옷장을 정리하다가

첫 출근 날 입을 옷이 마땅찮아 보였는지

제 손을 끌고 근처 백화점으로 갔죠.

군청색에 흰색 스트라이트 치마 정장을

꺼내 들고 저에게 입어보라고 권했죠.

브랜드 옷이라곤 한 번도 사준적이 없었던

엄마였지만, 이날 만은 통 크게

제법 값이 나가는 브랜드 옷이 든 쇼핑백을

딸의 손에 쥐어주고 환하게 웃으셨죠.

첫 출근날, 엄마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엄마가 사준 새 정장을 입고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서던 그날의 감격은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하겠지요.


취업난에 시달리는 요즘의 청춘들이

얼마나 경험하고 싶어 하는 한 장면 일까 를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지금이야 말로, 바야흐로 취업의 시즌이니까요.

시작하기 좋은 봄 아니 취업하기 좋은 봄...

시작도 취업도 어려운 건 매한가지입니다.

해마다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이슈가

빠지지 않고 제기되고 있지만

청년이 일하고 싶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인지,

청년을 일이라도 시키는 자리를 창출하는 것인지가

궁금해지는 것은 왜일까요?


어젯밤 오랜만에 공원으로 저녁 산책을 나갔어요.

아이들이 풋볼장에서 마스크를 쓰고

땀을 뻘뻘 흘리며 축구 경기를 하고 있었어요.

아이들의 함성 소리와 웃음소리가

마스크 사이로 새어 나올 때마다 얼마나 흐뭇하던지요.

그러다가, 또 우울해졌답니다.

저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이 운동장에서 처럼 마음껏

훨훨 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문득, 제가 신입 시절에 썼던

모 기업의 신입사원 공채 모집

광고의 카피가 떠오릅니다.

' 세상은 이제, 나에게 날개를 펼치라 한다 '

가슴 뭉클했던 저의 첫 출근을 떠올리며

쓴 카피였죠. 이제, 이런 카피가

더 이상 신입사원 모집광고의 헤드라인이

될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춘들이

저마다의 날개를 펼치기를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무책임한 말을 하는

반백살의 어른은 되고 싶지 않으니까요.


<남은 생 잘 먹겠습니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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