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약속

by anego emi
6.png

저의 아침을 깨운 것은

다름 아닌 '기호 00번'을 외치는

둔탁한 마이크 소리였죠.

다들 부지런도 하시지요.

아침 댓바람부터 참으로

많이들 모이셨더군요.


그러고 보니 대한민국에서

큰소리 좀 치는 두 도시의 수장을 뽑는

보궐선거가 코앞이네요.

여러 가지 사태로

어수선한 이 시국에 이 선거는

많은 의미를 갖는다고

뉴스가 알려주네요.


그럼요. 중요하다 마다요.

누군가에게는 집값이 걸리고

누군가에게는 땅값이 걸리고

누군가에게는 생존이 걸리고

누군가에게는 취업이 걸린 문제인 걸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제가 투표라는 걸 해 본 것은

몇 년도 채 되지 않아요.

정치란 '딴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대학교를 다니고 회사를 다니고

이 만큼 나이를 먹었답니다.

그런 저의 태도를 바꾼 것은

당연히, 짐작대로 '촛불 집회'였죠.


무엇보다 저를 가장 분노하게 한 것은

그 국정농단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이 그다지 특별하거나

대단히 질이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었죠.

어제의 평범했던 그들이

어쩌다 그런 일의 핵심 인물이 되었는지

그들이 그렇게 아무렇게나

난장을 부려도 되는 곳이

정치판이라는 것에 분노가 치밀었죠.

그러다가 제가 참으로 무지한

국민이라는 사실에 부끄러웠답니다.


며칠 전, 소셜벤처를 운영하는

젊은 대표의 강연을 유튜브로 봤는데요.

자신은 '이 사회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 않았다고요.

단지, 이 사회에서

'내가 언제 가장 분노했던가'를

생각했다고요. 그 분노를 해결하면

사회가 좀 더 나아지지 않겠냐고요.


네, 그렇습니다. 저는 그 분노를

이 중요한 선택의 기준으로

삼을까 합니다. 제 분노를

잠재워 주기 위해

공짜가 아닌 정당하게 대가를

치르겠다는 약속에

귀중한 제 한 표를 던지질겁니다.


봄날의 포근한 햇살과

뿌연 먼지 속에서

용을 쓰는 그들을 보며

저는 왜 시뻘건 쭈꾸미 볶음이

생각이 나는 걸까요?


<남은생 잘 먹겠습니다>

아네고 에미




매거진의 이전글디어 마이 필라델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