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마이 필라델피아

by anego emi
조금더 사랑 .jpg


형제의 도시, 필라델피아를 아시나요?

다양한 이민자들이 모여사는 이곳은

비교적 자그마하고 수수하고 평범한 도시죠.

그러나, 할머니의 품 같은 편안함이 있답니다.

매일 총성이 울리고 사이렌이 끊이지 않은

이곳에서 끈끈한 우정과 은근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왜일까요?


스물일곱 살..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미국으로 갔죠. 그것도 흙인 들이 넘친다는

필라델피아로 말이죠.

뭐, 대단한 이유나 영감을 받았어도 아니에요.

영화, 필라델피아의 엔딩에 흐르던 음악과

처연하지만 울컷 하게 하는 분위기가

저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그래, 이왕이면 저곳에서 살아보자.


그곳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대학 동기가

저를 응원했죠. 살아보면 정이 드는 곳이라고.

대학가 기숙사에 짐을 풀고

해가 뉘엿뉘엿 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친구와 함께 필라델피아 사람들의

소울푸드인 필리 치즈스틱을 먹었죠.

누릿한 고기 냄새가 조금은 역겨워졌지만

맛있었어요. 그리고 조금은 불안하고

들썩이던 마음이 편안해졌죠.


저는 그곳에서 커뮤니티 컬리지를 다녔는데요

그 당시만 해도, 친구처럼

대학원에 진학할 요량으로

문과대 출신인 저에게 부족한

경제학 과목들을 보충하기 위해서였죠.

지역사회를 위해 운영하는 학교인 만큼

흙인 들이 정말 많았고요

그다음은 스페니쉬. 이탈리안,

저와 같은 동양인 등등으로

클래스는 꽉 차곤 했죠.


영어에 서투른 저에게

다들 친절한 편이었고

시험기간이면, 교수님이 불러주시는

과제를 받아 적지 못해서 쩔쩔매는

저에게 슬쩍 노트를 내밀기도 했죠.

(그런데, 갈겨쓴 그 핸드라이팅이

더 읽기 어려웠답니다)

학교에서 기숙사까지

전, 셔틀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 간 적이 많았는데요

해가 질 무렵의 하늘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죠. 그다지 높지 않은 빌딩 숲 사이로

지는 해를 뒷걸음치며 보다가

넘어질 뻔 한적도 많았답니다.


새벽에 아침을 파는 카페에서

두 시간 일을 하고 학교로 가

첫 수업을 듣고, 점심시간엔 커피 한잔을

마시며 예습을 하거나 부족한 잠을 자기도 했죠.

안 그래도 잘 안 들리는 영어가

피곤한 날에는 더 안 들리고

수업이 끝나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한없이

무거웠죠. 그럴 때마다 저는

시청 계단에 쪼그리고 않아

석양이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허긴진 배를 필리 치즈 스틱으로

채우며 힘을 내곤 했답니다.


뒤돌아 보면 그때는 언제나 씩씩했지만

언제나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그런 저를 필라델피아는 보듬어 주었답니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만난 친구가

어깨를 힘 있게 감싸며

'잘 지내고 있지? 별일 없지?'

하고 환한 미소와 함께

안부를 묻는 것 같은 그런 친근함을

이 도시를 걷고 또 걸으며

마음으로 느끼곤 했답니다.


오늘은 '스트리트 오브 필라델피아'를

들으며 필리 치즈 스틱을 크게 한입 먹어야겠어요.


<남은생 잘 먹겠습니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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