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matter what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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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창문부터 활짝 열었죠.

밤새 잠을 설치며

이상한 꿈들을 줄줄이 꿨는데요

마치, 잠시도 쉬지 않고

장거리 마라톤을 한 것처럼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했답니다.

유리 맨탈인 것은 알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큰 일보다

작은 일 앞에서

어이없이 무너지게 되네요

뒤돌아보면, 이런 나약한 담력과 배짱으로

번번이 사건이 끊이지 않는

미니 시리즈 같은 일들을

어떻게 해 왔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저번 주 금요일을 말아먹고

주말을 온통 한숨으로

답답하게 했던 사건의 진모는 말이죠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됩니다.

요즘, 아이패드로 그리는

수채화 일러스트들이 반응이 좋아서

카드와 엽서 그리고 스티커를

10장쯤 제작했죠.

그리고 오래전에 가입해 놓았던

네이퍼 팜 스토아에

상품 등록을 하고 미술스프라는

이름으로 오픈을 했죠.

혼자서라면, 힘들었을 터였는데

프리랜서로 가끔 나가는

후배네 회사의 막내가

새로 구입한 디카로

요리조리 연출을 해서

정성껏 촬영을 해주었답니다.


고맙고 들뜬 마음에

아침을 든든하게 챙겨 먹고

하루 온종일 맥 앞에 앉아서

컬러 보정을 하고

어울리는 문구를 고민하고

오랜만에 신이 났었죠.

생각보다 까다로운 등록 절차 때문에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동영상 강의를 들어며

겨우겨우 오픈을 하고

마치, 큰 일을 해낸 것처럼

뿌듯했답니다.


그다음 날, 햇살이 유난히 따뜻했죠.

'이제, 봄이 정말 오는구나' 하는

생각에 커피 한잔 손에 쉬고

공원 산책을 나갔다가

기분 좋게 돌아가는 길이었죠.

그때였답니다. 문제의 전화가 울린 것은...

친절하고 상냥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신을 네이버 펌 스토아의 대표님들을

지원하는 회사에 근무하는

누구누구라고 소개했죠.

간간히 웃음을 썩어가며

가게 처음 오픈하면 아무도 몰라주고

검색어에도 잘 안 잡혀서

많이 깝깝하실 거라며,

그래서 지원을 해드리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많은 분들이 이용하고 계시다고...

이 혜택은 가게를 막 오픈한

저와 같은 신규 회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막상, 가게를 열어놓기는 했지만

과연 지인들 말고

누가 알까 하는 생각을 했던지라

그 말들이 백번 옳고

심지어 고맙기까지 했답니다

(이렇게 제가 단순합니다.

광고회사 20년 다닌 사람 맞습니까?

이런 말에 이렇게 쉽게

공감의 한 표를 던지다니 말이죠.)

전화기가 뜨끈해지도록

설명을 이어가더니

한 달에 4만 4천 원만 내면

SNS, 블로그, 검색어 상단 순위에

오르도록 모든 것을

관리해드린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함께 성장하는 기쁨을 나누고 싶다고...

4만 4천으로 그런 효과를 낼 수 있다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투자 없이 공짜로 되는 게 없다' 하던

지인의 말이 떠올랐죠.

'그래, 일단 투자해보자.'


계약서를 카톡으로 받았는데

무어라 무어라 빠른 설명이 이어졌고

서명란에 제 이름을 쓰는 순간,

일 년 치의 금액이 결제되었죠.

'헉, 하는 마음에 이건 뭐냐 하고'

물었더니, 12개월 할부의 개념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잘 관리해

드리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는데요.

영 마음이 편치 않는 거예요.

급히 검색을 해보니

이렇게 계약을 해서

피해를 본 사람들이 사례가 줄줄이

뜨기 시작하지 뭐예요.

얼른, 카톡으로 담당자에게

계약 해지를 요청했죠.

정확히 15분 만이었답니다.

그랬더니 담당자가 전화를 할 거라고 하더군요.

잠시 후, 또 다른 상냥하고 웃음을 머금은

다른 목소리가, 해지의 이유가

개인 변심인 경우는

위약금은 물론이고,

이미 진행 중인 서비스에 대한

비용까지 물어야 한다는군요.


'15분 동안 무엇을 얼마나 진행했냐' 하는 질문에

이미, 저의 인스타 개정의 팔로우와

좋아요의 수을 늘리는 작업이 진행되었다는군요.

그럼, 당장 진행을 중지하라고 했죠.

그런데 그럴 수없다는군요.

어이가 없고 당황스러웠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그러면 위약금은 물겠다.

그러나 나머지 비용은

좀 부당한 것이 아니냐.

가격의 조율이라도 해달라고 말했죠.

상냥하고 웃음기 머금은 그 목소리와

2시간 하고 반을 통화를 하고

결국, 월요일 계약을 해지를 하는 것으로

일단락하고 통화를 끝냈죠.

물론, 가격 내고는 없고요.


순간의 달뜬 마음이

제가 만든 카드를 100개 이상 팔아야

겨우 생길까 말까 하는

돈을 채가고 말았답니다.

머리가 멍하다가

마음이 멍하다가 공허해졌죠.

글이나 쓸 것이지

괜스레 온라인 샵은 오픈해서

바보같이 사기 아닌

사기를 당하는구나 싶어서요.

돈이 아까워서라기 보다는

제가 한심해져서

부들부들 손이 떨렸답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고도 남을 만큼

사회생활을 한 여인의

판단력과 순발력이

고작 요정도 인가 싶어서요.


그리고, 이 여파는

봄이 바람으로 전해지던

주말 내내 이어졌답니다.

갱년기인지 안 그래도 뭘 먹어도

맛도 없고 의욕도 떨어지는

요즘의 저에게 이런 일들은

어떤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데 있어서

한없이 소심하고 쪼그라들게 하죠

이까짓 것 별일도 아닌데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아침 햇살은 너무 눈부셨답니다.

'다시 무엇이든 시작해야 하는 거야'

하는 결심을 또 하게 될 만큼요.

문득, 일본 광고의 카피 한 줄이 떠오릅니다.

봄, 시작하기 좋은 계절...

이왕이면 봄에 시작하자

이러저러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

용기와 다짐을 방해하더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시작해보자고요.

봄이니까요.


<남은 생 잘 먹겠습니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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