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통보하는 방법

by anego emi

'인 더 에어' IN THE AIR

이 영화의 주인공 K은

기업을 대신해서 누군가에게

해고를 통보하는 일을 하죠

기업이라는 절대 강자가 해치우기에

가장 껄끄럽고 불편한 일을

제법 높은 보수를 받고 대행해주죠.


곰곰이 생각해보면,

철거 대행업체와 무엇이 다를까 싶지만도

K은 꼼짝달싹 할 수 없는

해고의 이유를 어김없이 찾아내고

비수 같은 말들을 차분하게 쏟아내며

당사자를 회사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자발적 루저로 만들죠.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그 덕분에 K은 미국 전역을 여행하죠.

공항에서의 빠른 수습을 위한

남다른 요령을 물론이고,

단골 고객을 향한 항공사의

뻔한 인사치레와 친절에

내 집 같은 편안함을 느끼곤 하죠.

(집보다 비행기 안이 더 익숙하니까요)


K에게 젊은 파트너 J가 생기죠.

명문대 출신의 명석한 그녀는

직접 대면하는 것보다

화상 통화로 해고를 통보하는

프로그램을 보스에게 제안하죠.

확신에 찬 J에게 K는 이 일은

직접 얼굴을 보고 해야

하는 일이라고 단호하게 말하죠.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J와 함께 가장 불편하고

가장 익숙한 여행을 떠나게 되죠.


그러나, 뜻밖에도 새로운 시스템에

확고했던 J의 마음을 바꾼 것은

긴 여정의 중간에 날아온 애인의 이별 문자였죠.

오랜 인연 몇 줄의 글로 끊어내는

애인의 매정함 앞에 J는

내내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고 말죠.

그런 J에게 K는 말하죠.

아마도 그들도 모니터 속의

낯선 사람에게

오랫동안 몸담았던 회사에서

너는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란

말을 듣게 되는 것은

지금 너와 같은 기분 일 거라고.


그 후, J의 달라진 태도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직접 가야 하는 비용과

시간을 아끼기 위해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죠

J가 처음으로 화상으로 해고를 통보한 날,

그 누군가가 다리 위에서

투신자살을 하는 사건이 생기고

그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은 J는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하죠


J를 홀로 배웅하던 K는 말하죠.

'아무도 몰랐다고. 내가 이렇게 될지는...

내 앞에 이런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몰랐다고.

열심히 일하고 버티다가

그 나이가 되면 더 나은 삶을 살고

더 나은 여유가 생기고

더 행복해질 줄 알았다고.

그러니까 그 나이가 되면

어떨 것이라는 계획은

나이가 들수록 삶을 더 지치고

재미없게 만들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

무모한 일로 만들고 만다고


백번 맞는 말이고 말고요.

회사와 함께 늙어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제가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작가가 되기 위해 회사를

관두게 될지는 몰랐으니까요.


누군가.. 앞으로의 계획이 뭐냐고

저에게 물으신다면

저는 이렇게 답할지도 몰라요

계획 없이 사는 것이 계획이라고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지금 할 수 있다면

그걸 하면서 살아갈 거라고요.

인생 뭐 있겠습니까?

사는 게 인생이죠


<남은생 잘 먹겠습니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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