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엔 자전거를 타겠어요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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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월 중순이네요.

따듯한 햇살과 새파란 하늘은

보는 사람들의 행복지수를

어떤 이유든 조금씩 높이기 마련이죠.

그 덕에 용기를 냈답니다.

자전거를 배워 보기로 말이죠


도쿄 유학시절 자전거를 사러 간 적이 있었죠.

가격대와 눈에 찬 자전거를 고르자

인상 좋은 아저씨는 저에게

일단 한번 타보라고 했죠.

비틀비틀 중심조차 잡지 못하는

저의 본새를 묵묵히 지켜보다가

자전거를 사는 것은 무리라고 딱 잘라 말했죠,

일단 주변 친구에게 자전거를 빌려 충분히

연습을 한 다음에 사러 오라고 하셨죠.

단순하게 페달만 잘 굴리면 된다는

제 생각은 엄청난 오만이었죠.

(소심한 일본 사람들이지만

자전거는 거의 곡예 수준으로 타거든요)

그 후로 자전거에 대단 욕심은 접었죠.


그런 제가 요즘 자꾸 길거리의

자전거들이 밟히기 시작하지 뭐예요.

봄바람 탓인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별별 사람들이 다 부러운 것은 물론이고

저 기분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는

강한 충동에 휩싸이기 시작했죠.


결국, 친한 후배를 꼬셔 서울숲으로 갔죠.

자전거도 타고 산책도 하고

요즘 핫한 성수동에서 저녁도 먹자고 바람을 잡았죠.

맘 좋은 후배 덕에 저는 씩씩하게

자전거 대여소에서 소위 '아줌마 자전거'를 빌리고

근처 공터에서 후배의 가르침에 따라

휘청휘청이며 자전거와 사투를 벌였지만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고

30분을 훌쩍 넘어도 실력은

나아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체력만 바닥으로 야금야금 떨어지더군요.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자전거의 무게는 후배가 거들어도 천근만근이었죠.

'이제, 몸으로 뭘 배우는 건 무리인 건가?

진정 내 힘으로 움직일 수 있은 것이

내 몸뚱이뿐이어야 하는가?'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들지 뭐예요


어쩔 수 없이 체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한 시간도 안돼서 그녀와 함께

다시 자전거 대여소로 돌아오고 말았답니다.

자전거를 반납하려고 하자,

대여소 아저씨는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

왜 그러냐고 물으셨죠.

저는 자전거를 배워볼 생각이었지만

역시 무리인 거 같아 포기하려 한다고 했죠.

그러자 아저씨는 빙긋이 미소를 짓으시며 말했죠.

자전거 가르치는 것엔 자기가 도사라고,

처음부터 페달을 밟지 말고

무조건 스키 타듯이 한 발씩 한 발씩

힘껏 밀어가면서 균형 잡는

연습부터 하라고 하셨죠.


아저씨와 후배의 독려로 대여소 앞 길에서

다시 자전거를 타보기로 마음을 다잡아 먹었죠.

머리는 아저씨의 가르침을 백 퍼센트 이해했으나

이미 힘이 빠진 손과 발은 제대로 따라주지 않았고

'할 수 있다'를 외치면 저를 응원하는

두 사람에게 연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부지런히 페달을 밟아 봤죠.

그 덕분인지 약간의 균형감을 익힌 저는

조심스레 앞으로 속도를 내어 봤죠.


그 순간 기분 좋은 봄바람이 불고

제 머리카락 위로 벚꽃이 날리지 뭐예요.

' 아... 이런 기분이구나.'

그간의 고생이 사라지는 아주 짧지만

기분 좋은 순간이었답니다.

몇 번 만 더 이런 식으로 연습하면

자전거를 탈 수 있을 거라는 아저씨의 말에

감사를 표하고 후배와 산책길을 나섰죠


산책을 하며 내내 생각해봤죠.

'자전거... 정말 탈 수 있을까?'

이제, 정말로 의지만으로

무언가를 배울 수 없는 나이가 된 걸까요?

배우는 것이 단 한 번도

두려운 적이 없던 저였는데 말이죠.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나이가 들어감을 어쩔 수 없이

몸으로 확인하게 되는 순간들이

이제부터, 성큼성큼 다가오겠죠?

그래서 점점 늘어가는 비타민의 개수가

씁쓸해지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이봄이 가기 전에, 몸에 좋은 제철 음식이라도

챙겨 먹고 자전거 꼭 타보렵니다.


<남은생, 잘 먹겠습니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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