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연락을 끊은 지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가네요.
그녀로 말하자면,
저와 10년이 넘도록 끈끈하게
이어져왔던 인연으로
가족보다 가까운 사이였답니다.
맛있는 걸 먹으면
다음번엔 그녀와 같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고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그녀가 동행해 주면 얼마나 기쁠까
하는 들뜬 마음이 들곤 했죠.
그런 그녀가... 어느 날
허리춤까지 오는 긴 머리를
망설임 없이 싹둑 잘라내듯,
연락을 뚝 끊었답니다.
그 이유를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납득이 잘 되지 않았던
저는 그녀와의 마지막 날을
찬찬히 떠올려 보았죠.
그녀가 큰 마음을 먹고 낸
2주간의 휴가가 끝나가던 날 -
화창한 봄날에 취한 저는
무작정 우리 동네로 건너오라고
그녀를 부추겼죠.
산책도 하고 수다도 떨고
최근에 발견한 맛집에서
푸짐한 제철 음식과 그녀가 좋아하는
막걸리를 마시자고 앙탈을 부렸죠.
그녀는 몇 분간의 망설임 끝에
오케이를 그리며 빙그르 도는
이모티콘을 저에게 날렸죠.
포근한 봄 햇살 바람 덕분에
우리는 걷고 또 걸으며
그간 쌓인 수다를 이어갔죠.
슬슬 다리도 아프고 허기가 질 타이밍에
제가 콕 찍어놓은 맛집에 도착한 우리는
미나리와 바지락이 듬뿍 올려진 부침개와
차가운 막걸리를 주문하고
허겁지겁 먹고 마셨죠.
술기운에 느슨해진 몸과 마음은
평소라면 잘하지 않던 이야기를
거침없이 털어놓게 하고
평소라면 그냥 듣고 넘겼을 말에
쓸데없는 토를 달게 되는지도 몰라요.
술이 센 편인 그녀인데
금세 취가가 오른 그녀는
최근에 시작한 주식 이야기에
열을 올리다가, 경제관념이 없는
저를 걱정하다가, 돌연 부모님 이야기를 꺼냈죠.
'너무 열심히 사셨는데
아직도 고생만 하신다' 하며 울먹이다가
저와 잔을 부딪히며 연거푸 마신
막걸리 덕분인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부모님 생각만 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흐느끼기 시작했죠.
저는 그녀가 타고난 심성 좋은 효녀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 그래도 너 같은 딸을 두어서
행복하실 거라고 그리고 나 같이 이기적인
딸을 둔 우리 부모님도 있다' 하며 그녀를 토닥였죠
그리고 또 서로의 빈 잔이 채워지고
그녀의 눈물바람은 잠시 마른 듯했으나
무슨 대화의 끝에 그녀가 불쑥
약간의 울먹임과 단호함이 담긴 목소리로
따지듯 묻기 시작했죠.
'언니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잖아...
먹고 싶은 거 마시고 싶은 거
돈 걱정 없이 다 하고
갚을 빚도 없고 그저 언니 생각만
하고 살면 되잖아. 그러니까 모르는 거야.'
갑자기 이런 이야기가 그녀의 입에서
왜 튀어나오게 되었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지만
그때, 제가 그녀에게 혼잣말처럼
건네었던 말은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있었죠.
' 아하.. 그래.. 그러고 보니 너와 나는
접점이 별로 없구나.'
저의 이 말을 끝으로
그녀와 저 사이에 침묵이 흐르고
잔에 남은 술을 비우고 일어서고 말았답니다.
전철역에서 개찰구로 향하는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고
발갛게 상기된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을
본 것이 우리의 마지막이었죠
집으로 돌아와서 아무래도
그녀가 마음이 쓰여서 전화를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고, 제가 남긴 카톡은
그다음 날에 읽혔지만 답이 없었죠.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이렇게 까지 차갑게 돌아선 이유를
당체 알 수가 없었던 저는
몇 날 며칠 서늘한 마음을 움켜쥐고
간간히 한숨을 내쉬어야 했답니다.
오해가 있다면 풀면 그만일 터였지만
그녀가 연락을 끊은 것은
그런 문제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번 일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그저 그녀와 저 사이에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을 뿐이며
그녀는 그녀대로의 삶이
저는 저대로의 삶이
순간 우리를 멀게 느껴지게
했을지도 모르니까요.
앞으로 저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말고는
그녀의 몫이며, 그녀의 영역이며
제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지요.
단지, 제가 바라는 것은
그녀가 저를 떠올릴 때 어떤 이유에서든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뿐이랍니다.
혹, 다시 그녀를 만나게 된다고 하더라고
'저는 그녀를 이해한다'는 거짓말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누가 누구를 함부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남은 생 잘 먹겠습니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