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입맛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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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덥 한 아침 공기에 창문을 활짝 열었더니

고소하고 눅진 튀김 향이 솔솔

바람을 타고 제 코를 간지럽히네요.

코로나 때문에 한동한 뜸했던

이 음식 냄새의 출처는

분명 근처 고등학교의 학생식당입니다.

학창 시절 내내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먹어온 저로써

급식이라는 단어도 생소하지만

전교생들의 수다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곳에서 왁자지껄 다 같이

밥을 먹는 맛이 어떠한지 궁금해지네요.

분명, 끼니를 때우는 것에 가까운

회사 사원식당과는 다른 분위기겠지요.


점심은 아이들도 어른도 하루의 반토막에서

만나는 즐거운 구원임이 틀림없겠죠.

집에서 일을 하거나 작업을 하는 날이

대부분이 저는, 아주 가끔은

회사 동료들이랑 먹던 점심이

간절하게 그리워질 때가 있죠.

그 흔하디 흔한 일상의 한토막에 불과했던

그런 일들이 막 내린 커피와

토스트를 앞에 둔 저를

뭉클하게 할 줄 누가 알았을까요

요즘 같은 시대에 혼밥이 편하다고 하지만

저는 아직도 밥은 앞자리, 옆자리의

누군가의 달그락 거리는 수저 소리를 들으며

함께 먹는 것이 좋은 걸 보면

전 역시 옛날 사람임에 틀림없네요.


급식하니까 몇 달 전에 들은

라디오의 사연이 문뜩 떠오르네요.

코로나 때문에 학교도 못 가고

친구들도 못 만나는 근황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던 디제이가

'지금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요?'

하는 질문을 던지며 시청자 사연을 받았죠.

한 초등학생 아들을 둔 엄마의 사연이었는데

마시던 커피를 푸하고 내 뱉을 만큼 재미났죠.

엄마는 학교도 못 가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도 못하는 아들이 안타까운 마음에

'아들... 지금 누가 제일 보고 싶어? '하고

살갑게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아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곰곰이 생각에 빠지더니

" 음... 급식 이모' 하고 대답을 했답니다.

사연을 읽어 내려가던 디제이는

웃음을 터뜨리며 " 에이.. 맛있는 거 좀 해주세요'하고

아들의 마음을 대신 전하듯 앙탈을 부렸죠.

날마다 바뀌는 급식 메뉴와

엄마의 밥상은 아이의 입장에서는

분명 차이가 났을 터겠죠.

'돌아서면 밥'이라고 투정을 하던

두 아이의 엄마인 후배가 떠오르네요.


최근에 본 티브 프로그램에서

직장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점심 메뉴 베스트 10을

소개했는데, 글쎄 돈가스가 당당히 3위를 차지했답니다.

돈가스 하면 아이들이나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2-30대는 물론, 4-50대에게도 이렇게 사랑받는

메뉴일 줄은 몰랐네요. 점점 어른의 입맛도

아이들을 닮아가고, 아이들의 입맛도

어른의 입맛을 닮아가네요.

맛있는 것이 넘쳐나는 요즘이지만

언제나 모두의 자랑을 받는 음식은

시대를 초월한 흔하게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음식들이라는 사실에, 새삼 뿌듯해집니다.

주말마다 떡볶이 가게 앞에 길게 늘어선

줄들을 힐끔거리며, 물가가 아무리 올라도

착한 가격으로 우리를 기쁘게 해주는

음식들이 가득한 그곳이야 말로

누구에게나 활짝 열린

맛있는 천국이 아닐까요?


<남은생 잘 먹겠습니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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