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토요일 오후엔
사 남매 중 한 명은 반드시 집을 지켜야 했죠.
한창 나가 놀고 싶었던 그 시절에
우리는 당번을 정해가며
그 규칙을 지켰답니다.
그러나 장남, 장녀, 막내의 타이들을
거머쥔 그들은 엄마라는
막강한 백이 있었죠.
어찌해서 핑계가 생기면 대타는
여지없이 제가 되고 말았답니다.
집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궁금하신가요?
그것은 바로, 일주일의 피로를 날려 줄
두 시간이 넘는 사우나를 끝내고 돌아온
아버지의 맥주 심부름을 가기 위해서랍니다.
한 집안의 가장이자 절대 권력자였던
아버지는( 그때 그 시절엔 친구 같은
아버지란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지요)
늘 단정했던 머리를 부스스 흩날리며
집으로 돌아와, 엄마가 정성껏 준비해 놓은 식탁에
앉음과 동시에 차가운 맥주 한잔을
넘치도록 따르고 시원하게 넘기셨죠.
믿기 어렵겠지만, 제가 초등학교 시절엔
혼자 맥주를 사러 슈퍼에 가도
아무 문제가 없었답니다.
그저 후덕한 주인아주머니가
" 조심해서 들고 가거라" 하는
당부의 말씀을 더할 뿐이었죠.
그렇다면, 미리 사다 놓으면
그만이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 터인데요
글쎄요. 그때는 아버지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시며 당번으로 남은
우리 중 누군가에게 " 맥주 한 병 사 오너라"하는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려야 했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오비맥주만을 드셨는데
어쩌다 단골 슈퍼에 오비맥주가 떨어진 경우는
온 동네 슈퍼를 다 돌어야 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곤 했답니다.
그랬던 아버지가 지금은
작은 유리컵에 따라 놓은 맥주 한잔을
떨리는 손으로 겨우 드십니다.
자신이 그토록 고집하던 오비맥주를 말이죠.
아버지는 정년 퇴임을 하고 몇 년 후부터
자신의 몸이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하셨죠.
그리고 병원에서 파킨슨 병을 진단받았답니다.
점점 몸이 굳어가는 병
그러나 머리는 너무나 또렷해지는 병
뇌 안에 몸에게 명령을 내리는
영역이 문제가 생긴 것이지요.
어떤 뇌 과학자는 말했답니다.
인간이 노화하는 것은 몸이 늙는 것이 아니라
뇌가 늙어가기 때문이라고요.
이 병을 앓는 환자들에겐
자신의 몸이 굳어가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몹시 고통스럽다고 합니다.
제 아버지처럼 자의식이 강했던
분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하겠지요.
그렇게 건강했던 아버지가
왜 이런 병에 걸렸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말이죠
그것은 너무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가난한 시골집의 차남으로 태어나
형제들 중에 유독 총명했던 아버지는
장학금으로 명문 고에 진학을 했고
부산으로 시집을 간 큰 고모의 도움으로
부산에 있는 법대에 진학을 했죠.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형편은 어려웠고, 그 와중에 엄마를 만나서
첫눈에 반한 아버지는 결혼을 결심하고
세관 공무원이 되었지요.
그렇게 칼출근 칼퇴근을 하는 공무원으로
살다가 퇴직을 했답니다. 아버지는
아침에 눈을 뜨면 갈 곳이 없고
할 일이 없고 하루 종일 멀뚱멀뚱 집을
지키는 신세가 되었죠. 사는 게 빠듯하다 보니
그 흔한 취미도, 친구도 별로 없었던 아버지는
서재에 틀여 박혀 세금 관련 책을 읽는 것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안 그래도
적은 말 수가 더 줄고, 외출하는 엄마와
말타툼이 잦아지고... 덩그러니 자신이 일궈낸
네모난 제국 속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죠.
아버지는 멍하니 창밖을 쳐다보며 햇살이 쨍한
눈부신 오후를 보내고 어둑어둑 해가 지는
까만 밤을 맞이하며 마음은 유약해지고
인생의 가장 쓸쓸한 면을 스스로
찾아내는 날들이 이어갔을지도 몰라요.
그것이 마음과 연결된 뇌를 자극해 예전처럼
움직이지 않은 몸을 탓하며 끔찍한 병을
안겨주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이것은 어떤 의학적 근거도 없는
순전히 내 아버지를 향한 딸의
안타까운 마음이 만들어낸 추측에 불과하지요.
늦은 밤까지 텔레비전을 보다가
휠체어를 밀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하고 돕니다. 아버지는
침대에 누워 잠이 들기 전,
무슨 생각을 하실까요?
혹, '내일도 아침에 눈을 뜰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는지요
<남은생 잘 먹겠습니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