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소녀시대 [1]
새벽에 눈을 뜨는 날이 많아집니다.
나이 탓도 있겠지만
요즘 들어 일찍 잠이 드는
날이 많은 탓도 있겠지요
멀뚱멀뚱 천장을 보다가
결국, 어둑어둑한 방안을 감도는
서늘하고 침울한 기운에
서둘러, 티브 리모컨을 누르고 맙니다.
어제의 뉴스를 반복하고
오늘의 날씨를 알려주네요.
갑자가 차가워진 날씨에
서리가 내리고 첫눈이 오고...
아... 문뜩 억울한 생각이 치밀어 오릅니다.
아직, 가을을 제대로 만나지도
느끼지도 못했다는 생각에 말이죠.
마음이 급해집니다.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키고
샤워를 하며 생각합니다.
'가자. 가을이 어느 날 연락을 뚝 끊고
종적을 감춘 연인처럼
영영 사라지기 전에...'
무슨 이유였을까요?
전 삼척에 가보기로 했답니다.
아마도 15년 전이었지요
일 때문에 잠시 들렀던 삼척의 바다...
어느 곳인지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짙은 코발트색 바다가 인상 깊었습니다.
한참을 서서 새하얀 거품을 문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 나가는 걸
멍하니 보며 괜스레 뭉클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일까요?
행선지를 망설임 없이 삼척으로 정하고
그다음은 여행길에 함께 할
벗을 정할 차례입니다.
탑처럼 쌓인 책들 중에
눈보다 마음을 사로잡은 책을
용감하게 뽑아 듭니다.
요네하라 마리 님의 [프라하의 소녀시대]-
중년이 되어 한없이 그립고
정겹고 사랑스러웠던
소녀 시절의 친구를 만나러 가는
그녀의 가슴 뭉클한 에세이...
자, 이제 떠나볼까요?
동서울 터미널에서 가장 빠른
삼척행 버스표를 사고
차가운 아침 바람 속에서
자판기 커피 한잔을 홀짝입니다.
달달한 그 맛에 정신이 버쩍 나네요.
제일 먼저 버스에 올라타고
창밖으로 분주히 움직이는
아침의 사람들을 훔쳐봅니다.
곧, 버스가 출발하겠지요.
그 출발과 동시에 저는
'프라하의 소녀들'을 만날 겁니다.
아울러, 까마득한 저의 소녀시절을
틈틈이 꺼내보려 애를 쓸지도 모르지요.
솔직히,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저에게도 소녀 시설의 그리운 벗이
한 명쯤은 떠오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띄엄띄엄 승객을 반쯤 채운 버스의
문이 닫히고, 덜컹덜컹 큰 몸집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출발입니다.
<남은생 잘 먹겠습니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