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생은 일하지 않습니다 10

나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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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후배가 불쑥 집으로 쳐들어왔다. 언제나 상냥하고 흔들림 없는 그녀가 웬일인지 잔뜩 취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그 와중에 편의점에서 산 수입맥주 4캔이 든 검정봉투를 내 앞으로 내민다. 나는 얼른 받아 들고 그녀의 팔을 잡고 앉은뱅이 소파 위에 앉힌다. 내가 그녀와 친해진 것은... 그녀가 나와 너무 다르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항상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던 나와 달리 그녀는 모두와 두루두루 잘 지냈고 그런 그녀를 그 누구도 싫어하지도 경계하지도 않아 보였다. 나도 회사에서 그런 종류의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나는 늘 생각지도 않았던 적이 생기고 쌓이는 일 앞에 나를 원망하는 팀원들이 생기고 그것들이 점점 눈덩이처럼 커져 어느 날 나에게로 사정없이 돌진해 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혼자 아파하며 새벽까지 눈물을 글썽이며 청승과 자학이 범벅이 된 아침을 맞이하곤 했다. 그 순간 난 그녀가 떠올랐고 그녀가 부러웠다. 나도 그녀처럼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아니더라도 힘들거나 불편한 사람은 진심으로 되고 싶은 않았다. 결국 난... 회사에서 도망쳐 나오고 말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잘 버티었고 쌓이는 연차만큼 직급도 올라갔다. 그런데 오늘 그녀는 몹시 아니 최고로 힘들고 지쳐 보인다. 그저 만취한 얼굴로 나를 보며 실실 웃지만 나는 알 것 같았다. 무엇이 그녀를 힘들게 하는지. 아직 인정받지 못한 소심한 남자들의 질투. 그리고 그들만의 은밀한 담합. 거기에 더해진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결론으로 위장한 그 누군가의 묵인. 그것일 것이다. 그녀는 맥주캔을 따 나에게 권하고 자신도 벌컥 한 모금을 마신다. 그리고 반달눈이 되어 나를 보며 또 웃는다 그리고 말했다. " 언니야. 나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 나는 순간 뜨끔했다. 매일 밤 아직도 흔들리는 나에게 묻고 또 묻는 질문을 그녀가 한다. " 그럼... 넌 잘 살고 있잖아. 나보다 천만 배는 낫다. 걱정 마. " 그러나 그녀는 어느새 눈물까지 그렁이며 나를 빤히 보다 또 말했다. " 언니가 부러워. 일 안 해도 살 수 있는 언니가. 난 일을 안 하면 뭘 할지 몰라서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어서 이렇게 밖에 못살아..." 나는 축 쳐진 그녀의 어깨를 가만히 껴앉는다. 그리고 토닥이며 말했다. " 아니야. 그저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어. 용기가 없는 거야. 그런데 그 용기 절대 억지로 내어서는 안 되는 거야. 나처럼... " 그녀가 돌아간 후 나는 남은 맥주 한 캔을 들고 창가에 섰다. 일하지 않아도 분명히 살 수 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가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 이유를 찾는 것부터 시작하면 아니 잊고 있었던 그 이유를 하나둘씩 다시 기억해 내면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 일하지 않아도... 그녀에게 하지 못한 말을 스스로에게 가만히 해본다.



<해결책 > 싫어하는 일 리스트를 만들고 가능한 싫어하는 일은 거절하거나 안 해본다. 좋아하는 일 리스트를 만들고 그 일들 중에 하나라도 정말로 잘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를 상상해본다.



아네고 에미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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