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하니?
뭐하니? 그냥. 이것저것. 넌? 당근 일하지. 바쁘냐? 맨날 그렇지 뭐. 날씨도 좋은데 뭐라도 해라.
글쎄... 그럼, 오늘도 수고해. 너도.
이것은 지인들과 나의 하루를 묻는 그저 아주 평범함 안부인사이거나 별 뜻 없이 오가는 대화의 부스러기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뭐하니? '라는 지금까지 수천번도 더 들어온 이 말에, 수업시간에 깜빡 졸다가 들킨 학생처럼 한순간 가슴이 뜨끔해질 때가 있다. 그 말 뒤에 '넌 오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거니?'라는 말이 메아리처럼 내 마음속에 울리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닌데, 생산적인 무엇. 남들에게 인정받는 무엇. 세상에 필요한 무엇. 그 무엇을 하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한 애 굿은 자책이 여전히 지지 않은 얼룩처럼 남은 탓이다. 하긴 일중독자로 10년을 넘게 살아왔는데 아무리 강한 해독제를 꼬박꼬박 투여한들 그 일 독이 쉽게, 말끔히 빠질 리가 없다. 갑자기 일을 끊음에서 오는 일종의 금단현상이라고 할까?
그러고 보니 우리가 습관적으로 내뱉는 '뭐하니?'라는 이 말은 다양한 의미를 품고 있다. 지금 뭘 하고 있는지를 묻는 일차적인 것에서 오늘의 스케줄, 현재의 위치나 직업, 앞으로의 계획까지. 그 질문이 던져지는 상황과 순간에 따라 대답의 선택과 의미는 확연히 달라진다. 나 또한 딱히 할 일이 결정되지 않는 날에, 누군가에서 던져진 '뭐하니?'라는 질문 앞에 나도 모르게 많은 생각을 하고 만다. 일 때문에 못했던 것들이 하늘만큼 땅만 틈 많아서 날마다 하고 싶은 게 넘칠 줄 알았는데, 고작 2주를 넘기지 못했고, 일과 바꾼 내가 간절히 다시 찾고 싶은 그 무엇들은, 아직도 제대로 파악되지 못한 채 진행형으로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그러다가 천장으로 시선을 멍하니 고정한 채 마시던 커피 잔을 내려놓고 스스로에게 '너 지금 뭐하니?'라고 묻는 지경에 이르면 그건 좀 곤란해진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뭐하니? 에 대한 대답은... 어떤 행동이나 행위가 아니라 생각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관한 것일지도 모른다. '당장 하고 있는' 이 아니라 '앞으로 하고 싶은'으로 포커스를 맞춘다면 말이다. 그러므로 답을 위해 자꾸 억지로 급하게 무엇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자신을 괴롭히고 피곤하게 만들 뿐이다. 이제는 몸이 아니라 마음에게 그 답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지금껏 몸은' 뭐하니?'에 대한 답으로 '일 한다라'를 외치며 충분히 몸부림쳐왔으니까.
해결책 : 카톡 대화명을 지금은 동네 산책 중. 오늘은 청소 중. 나는 쉬는 중.... 과 같은 행동 진행형으로 하고, 지인들이 뭐하니? 와 같은 말을 안부인사로 대신에, 동네 산책 좋구나. 청소 잘해라. 쉬는 게 최고지와 같은 결과 위주의 대화로 자연스럽게 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