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생은 일하지 않습니다 15

나를 위한 희망고문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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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풀이로 손금을 보니 재주가 많은데 몹시도 산만해서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소리 같다가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산만한 재주가 그동안 버라이어티 한 광고회사에서 꽤 유용하게 쓰였으니까. 이제 회사를 영영 떠났으니 이 널뛰는 재주들 중에 하나를 골라잡아 집중하고 강화시키는 훈련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나하나 꺼내보니 이거다 싶은 빵 터지는 놀라운 녀석은 발견되지 않았고 모두 잔잔하게 유용하게 쓰일 정도다. '이걸 하면 잘될 거 같은데' 가 매일매일 바뀌면서 내 인생의 희망고문이 서서히 시작된다. 그래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이 재주는 오롯이 나를 위해 쓸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내가 지치지 않고 스스로를 독려하며 조금씩 나아갈 수 있는 것에 가장 큰 의미를 두기로 했다. 그동안 너무 세상의 기준에 맞추고 그저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범위에서만 내 능력은 억지로 개발되고 힘겹게 발휘 었으니까, 이제부터는 남은 내 인생을 위해 진정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재주가 운좋게 기회를 만나 다시 이 세상 속에서 희미하게라도 반짝일 때 나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향해 더 나아갈 지도 생각해야 한다. 단순히 돈을 번다거나 유명해지고 싶다거나 이런 것들에 머무를 나이는 충분히 지났다. 앞으로 내가 하는 일과 나의 부족한 재주가 이 사회를 위해 조금이라도 상냥하게 쓰이길 바라는 마음은 결코 놓지 말아야 한다. 호기심은 잃지 않으면 늙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의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과 세상의 크고 작은 변화들에 매번 촉을 세우고 사는 것도 꽤 피곤한 일이다. 그저 내가 정한 선에서 나에게 시선을 돌리고 키 작은 성장을 위해 결과를 바라지 않는 나만의 호기심을 천천히 키워내면 그만이다. 하고 싶은 걸 찾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내가 잘하는 걸 하고 싶은 것으로 만들면 된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겠고 감조차 잡지 못하겠다. 유행처럼 순식간에 후딱 바뀌고 마는 이 하고 싶은, 아니 억지로 하고 싶다고 우겨야만 하는 그 무엇을 떠 올기기 위해 더 이상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 그저 잘하는 것이 하고 싶은 것이라고 굳게 믿고 싶다. 그러니까 심각하게 걱정할 필요도 고민할 필요도 없다. 누구나 정말로 진짜로 잘하는 것이 반듯이 하나쯤은 있으니까. 그게 무엇이든 나는, 나만은 잘 아는 법이니까.



<해결책 > 재주 리스트를 만들어 본다. 소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그럴싸한 것까지 빠짐없이 적어보고 하루에 한 가지씩 해본다. 진행하는 동안 가장 시간이 빨리 갔던 것 중에 몇개만 고르고 그것을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적어본다. 하다가 귀찮으면 잠시 그만두었다가 다시 하면 된다.


아네고 에미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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