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는 용기의 뒷면
누군가 작가가 되겠다는 나를 응원하며, 완두콩 위에 코와 귀, 꼬리를 날려 그린듯한 귀여운 돼지 일러스트가 정중앙에 그려진, 단편 소설집 같은 다이어리를 보냈다. 그리고 맨 첫 장에, ' 올해도 하고 싶은 것 모두 이루길 바라며 ... '라고 또박또박 쓴 그녀의 손글씨가 나에게 새해의 첫 안부를 묻는다.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한참을 따듯한 눈빛으로 내려다봤다. 그리고 나는 - 그녀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는 대신에, 내가 포기해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나에게 포기해야 할 것들이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다. 그것들을 포기라는 단호한 결단으로 한 해 동안의 내 인생에 가능한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나는 아이러니하게 포기의 반대말 같은 용기를 낼 것이다.
살다 보면 그런 때가 있다. 하려고 애쓸수록 더 안 되는 것은 물론. 억지로 버틸수록 힘과 열정이 쭉쭉 새어 나가며, 심지어 그 잔상들이 밤마다 야릇한 악몽이 되어 나를 괴롭힐 때. 이럴 때야말로 성취라던가, 성공이라던가의 명목으로 지금 하고 있는 것을, 과감히 그만 '포기해야 할 것들'의 리스트로 옮겨놓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나를 토닥이며 지금까지 애쓴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 조금 뜬금없는 핑계나 변명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주명리학에서 보면 '사방이 꽉 막힌 때'인 거다. 그냥 아무리 용을 써도 안 되는 순간이 나에게도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찾아온 것뿐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런 직감이 강하게 들 때가 있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그때부터 마음이 서서히 무거워지며 별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해지고, 아무리 눈물겨운 노력을 해도 잘 되기가 어려울 것 같은, 그래서 억지로 밀어 부친들 영광의 상처만 남기며 나를 몇 년쯤은 더 폭싹 늙게 만들고 말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머릿속에 안착하는 순간... 나는 조용히 물러선다. 그리고 그저 포기라는 아름다운 용기의 뒷면을 자신 있게 펼치며, 그걸 미리 감지하지 못한 채 밀어붙인 무모하고 치기 어렸던 나의 어깨를 살포시 감싸 안아준다. 그리고 누군가 '잘 돼가는 거야? '라고 물으면 큰소리로 '포기했어'라고 대답하는 거다.
< 해결책 > 포기할 사람, 포기할 물건, 포기할 일 등을 아주 신나는 마음으로 리스트업 하기. 그리고 내 삶의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해보기. PS. 자신을 포기하는 일은 포기하기.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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