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생은 일하지 않습니다 19

무릎 담요 같은 오늘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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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다. 새로운 한 해. 우리는 매번 '새로운'에 방점을 또 찍고, 올 한 해는 더 나은 그 무엇을 위해 소원을 빌거나 계획을 해야 한다는 습관적인 강박에 시달린다. 그러나 솔직히 365일이 지나면 매번 들이닥치는 새해라는 이름만 거창한 명분 앞에, 뭘 또 그렇게 다짐을 하고 마음을 추스르고 안 하던걸 혹은 안되는 걸 하겠다고 댓 찬 기압을 넣어야 하는 걸까? 그저 새해란 2019년이라는 꼬리표를 단 오늘의 연속일 뿐이다. 늘 하던 대로 하면 그만인 걸, 억지로 생각이나 결심을 짜낸 들, 그것 자체가 또 스트레스가 된다. 새벽부터 일어나 아메바처럼 흐물거리며 떠오르는 첫 태양 앞에 벅찬 주눅이 들고, 순간 심장이 쿵쾅쿵쾅 거리는 걸, 나도 잘 모르지만 내가 해야 하는 도전을 위한 용기가 꿈틀 되는 거라는 착각에 빠지며,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빳빳한 새해의 다이어리를 펼쳐봐도, 딱히 써 내려갈 것들이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만다. 그러니까 새해라고 특별해지지도 말고 기대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지금이 순간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각자의 인생을 위해 충분히 그리고 꾸준히 무언가를 해오고 있고 하고 있으니까.


새해 첫날, 나는 지인들과 바닥이 따듯한 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아끼던 커피를 마시며 뒹굴뒹굴 게으름을 피웠다. 폭신한 쿠션을 껴안거나 반쯤 누운 등 뒤에 밀어 넣고, 테이블보만 한 무릎담요를 허리까지 끌어올리고, 동그란 쟁반에 담긴 귤을 까먹으며 일상의 수다를 떤다. 그 누구도 '새해엔 말이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이쯤 살면, 나이가 슬슬 무겁다는 걸 느끼면, 새해란 그저 숫자가 바뀌는 것에 불과해진다. 그 숫자가 바뀐다고 해서 내가 달라지지도 더 행복해질 거라는 기대도 없다. 그만큼, 매번 당하면 그렇게 된다. 나는 깜빡 잠이 든 지인의 어깨 위에 무릎담요를 가만히 덮어주며, 문뜩 무릎담요 같은 오늘을 생각했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내가 필요한 만큼의, 충분한 따듯함이 있기에 그 이상을 욕심부리지 않는 오늘. 문뜩 그런 오늘을 반복하며 살고 싶어 졌다. 그걸로 행복해질지는 모르지만 분명 불행해지지는 않을 자신은 있으니까. 진짜 진짜로.


< 해결책 > 월별 주일 별 일별로 나눈 다이어리는 절대 사지 않을 것. (괜히 텅 빈칸을 보면 우울해지고 그거 끝까지 다쓰는 사람 본 적 없다.) 년도와 상관없이 쓸 수 있는 다이어리를 사고 오늘 해야 할 일보다 어제 한 일을 메모하며, 스스로를 기특해하거나 슬쩍 반성하기.


< 아네고 에미 >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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