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생은 일하지 않습니다 21

꿈이 주는 힌트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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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며칠째 비슷한 꿈을 꾼다. 여행을 가기 위해 챙겨 놓은 가방을 잃어버리는 꿈이다. 나는 그 가방을 찾기 위해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처럼 정신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점점 시야가 희미해지는 순간, 어디선가 아주 오래 전의 까맣득한 인연들이 하나둘씩 나타나 멍하니 정신 줄을 놓은 나를 붙잡고 흔들어 깨웠다.

최근에 잃어버린 지갑 탓인가? 도쿄에서 돌아온 후 새롭게 둥지를 튼 지인 회사의 첫 출근 기념으로 스스로에게 선물한 지갑이었다. 분명 가방에 넣어두었는데 저녁을 먹고 계산을 하려고 보니 감쪽같이 지갑은 사라져 있었다. 후배에게 오천 원짜리 한 장을 빌려 전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내내 지갑의 행방을 추적해봤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날 밤 침대 위의 어둠 속에서 부주의한 나를 질책하고 또 원망하고 그러다 뭐 '그깐 지갑'이라는 불편한 결론으로 풀 죽은 나를 토닥이며 억지로 잠을 청했다. 그리고 나는 새벽녘에 까무룩 잠이 들었고 꿈속에서 잃어버린 가방을 찾아 헤맸다.

작년 남미 여행 때 샀던 토끼가 수놓아진 천 지갑을 먼지 쌓인 잡동사니 속에서 찾아내고 급하게 만든 은행 카드와 지폐 몇 장을 구겨 넣으며 깊은 호흡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왠지 텅 빈 것처럼 울적해졌다. 게다가 반복되는 이상한 이 꿈은, 근거를 알 수 없지만 언제가 불현듯 스쳐지나 갈지도 모르는 불운을 암시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자꾸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 밤새 잠을 설친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켜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그리고 불안과 우울은 몸으로 떨쳐내는 거라는 누군가의 말을 떠올리며, 귓속에 흐르는 음악의 볼륨을 높이고, 걷는 것보다 약간 빠른 속도로 한 바퀴를 겨우 뛰었다. 내 심장은 머릿속이 새하얘질 만큼 터질 듯이 뛰었고,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 내 마음을 누르던 채증 같은 감정들을 조금씩 토해내는 기분이 들었다. 흐리고 찌뿌듯했던 마음이 서서히 개운해졌다. 편의점에서 차가운 생수 한 병을 단숨에 마셨다. 그리고 두 팔을 크게 벌리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한 점 없지만 어딘가 빛바랜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겨울 하늘은 서늘하고 영롱했다.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몇 권의 책을 사고 달달한 군것질거리를 몇 봉지 샀다. 뜨거운 비를 흠뻑 맞은 듯한 온몸이 따듯해지는 샤워를 끝내고, 지난 주말의 햇살 덕에 포근하게 살아난 부드러운 감촉의 스웨터를 꺼내 입었다. 그리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이야 말로 아껴둔 샴페인을 마셔야 한다고. '무슨 좋은 일 있냐'라고 묻는 친구에게 나를 응원해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친구는 '무슨 소리냐'라고 되물으며 나의 속내를 알겠다는 듯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렇다. 이런 기분에 사로잡혀 뭘 해도 우울해지는 날이야말로 '펑'하는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며 하얀 연기를 내뿜는 샴페인이 필요한 날이다. 질책보다 위로로, 원망보다 응원으로, 나를 이해하고 나를 용서하고 나를 안아주고 싶으니까. 내 인생은 또 이렇게 가끔은 이유 없이 약해지는 나의 하루를 기꺼이 환하게 웃으며 보듬어야 하니까.


< 해결책 > 어쩔 수 없는 실수를 한 날, 스스로에게 위로의 선물하기. 실수를 곱씹으며 우물 모드에 빠져 아무것도 못하는 것보다 기분 좋은 선물로 분위기 전환하기. 그리고 돈은 이렇게 쓰는 거라고 또 스스로를 칭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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